[사설] 재벌은 부의 독점을 사회적 책임으로 답하라

입력 2012-08-27 18:50

책임있는 자세 요구하는 법적·제도적 장치 강화 필요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SK 등 우리나라 10대 재벌그룹의 지난해 국내외 매출액은 946조1000억원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76.5% 수준을 기록했다. GDP는 그해 생산한 부가가치의 총계이므로 10대 재벌의 매출액 규모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다만 GDP 대비 매출액의 비율은 10대 재벌의 경제적 위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거대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27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2002년 10대 재벌의 매출액은 365조5000억원으로 GDP 대비 53.4% 정도였다. 2002∼2011년 사이에 10대 재벌의 매출액은 2.6배로, GDP는 1.8배로 각각 늘었다. 10대 재벌의 매출액 규모가 GDP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10대 재벌의 불어나는 몸집과 더불어 경제력 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같은 기간 10대 재벌의 계열사수는 318개에서 592개로 늘었으며, 이들의 참여 업종 역시 39개에서 57개로 확대됐다. 특히 제빵업, 교육 서비스업, 가축사육업, 레스토랑업, 부동산임대업, 콜택시운수업 등 중소기업·서민경제 부문으로 영역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율은 평균 34.6%나 된다. 이는 그룹 내 계열사들끼리 일감을 서로 주고받는 행태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공개 경쟁이 아니라 대부분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공정경쟁 원칙에 어긋난다. 계열사 간 내부지분율도 2002년 평균 45.9%에서 2011년 53.5%로 늘어났다. 그만큼 그룹 내 계열사 간 결합력이 강고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소기업·서민경제 영역까지 침범하는 문어발식 확장, 내부거래 만연, 내부지분율 증가 등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쟁점으로 거론돼왔던 재벌문제가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당장 재벌해체를 주장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의 재벌은 개발연대 압축성장 과정에서 출현한 역사적인 존재이며, 당시의 활발한 기업가정신은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계승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경제의 장래를 논하는 자리에서 재벌의 모든 행보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재벌은 압축성장의 실체였으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금융을 비롯한 자원배분에서의 특혜 등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는 재벌이 한국경제에 빚진 대목이며 몸집 위상에 걸맞은 책임 있는 존재로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이유다.

재벌닷컴은 올 10대 재벌의 매출총액이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부쩍 거론되는 경제민주화는 재벌 몰아세우기로 변질되거나 선거용 여론몰이의 수단으로 전락돼서도 안 된다. 공정경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재벌 스스로가 구현하도록 치밀한 법적 제도적 조치를 강화하는 일에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