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특허전쟁] 천문학적 무차별 특허소송… “IT 생태계 붕괴” 우려
입력 2012-08-27 21:51
“특허 만능의 시대가 시작됐다. 업계 미래를 시장이 아닌 법정이 좌우하게 됐다.”
27일 한 IT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미국 법원이 삼성전자와의 특허소송에서 애플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기업들이 기술혁신 대신 특허와 소송을 무기로 내세워 승부를 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특허 분석업체인 렉스 머시나에 따르면 2006년부터 모바일 분야의 특허 소송은 매년 20%씩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특허소송이 ‘협상카드’로 쓰였다면 최근 IT업계의 특허소송은 ‘공격수단’으로 변질됐다. 과거에는 특허소송이 크로스 라이선싱 협약이나 로열티 지불 등의 합의로 종료되곤 했지만 지금은 판매금지 등 실제로 경쟁사에 타격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손민선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특허가 기술을 넘어 경쟁의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특허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거대 IT기업들이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IT산업의 새 질서를 세울 수 있는 권력”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현재 전 세계 9개국에서 50여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애플은 특허를 무기로 판매금지를 병행하며 경쟁사들의 발목을 잡으려는 인상이 강하다. 이 과정에서 IT업계의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겉으로는 두 회사 간 특허소송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애플과 구글·MS 등 IT 공룡이 서로 얽혀 치고받는 대리전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IT업계의 특허 분쟁이 천문학적인 소송비용을 유발해 업계 발전을 저해하고 소모전 양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술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허권이 오히려 IT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사내 공지를 통해 ‘소송’보다 ‘혁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구글 노믹스의 저자인 미국 언론인 제프 자비스는 “혁신, 성장이 아닌 소송을 막기 위해 사용된 비용만 2011년 한 해 동안 무려 180억 달러(약 20조원)”라며 특허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3년간 특허소송을 통해 이익을 내는 ‘특허괴물’인 특허전문관리기업(NPE)들로 인해 발생한 특허분쟁 역시 평균 4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 전문가들은 특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AIP 특허법률사무소 이수완 변호사는 “미국의 회사들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가리지 않고 특허 소송을 걸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관련 지식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그러다 보니 일부 중소기업은 손해배상 액수가 워낙 커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음에도 합의금을 주고 끝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