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집합적 인격체 신앙이 필요한 때
입력 2012-08-27 18:02
구약 선민들에게는 집합적 인격체(corporate personality) 신앙이 있었다. 집합적 인격체 신앙이란 한 인격 안에 여러 세대가 함께 하나가 되거나 혹은 한 역사 안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백성이 시공간을 초월해 함께 하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널 때 이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다 죽었지만 집합적 인격체 안에서 함께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넌다고 생각한다. 또 이미 모세 이후 수백년 후에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도 집합적 인격체 안에서 함께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넌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 신학에 와서는 ‘아담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사상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사상을 현대적으로 적용하면 공동체 신앙,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연합운동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사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공동체 신앙으로 똘똘 뭉치고 연합운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대사회적 발언을 통해 시대정신을 주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안에 “그렇게 사람만 많이 모인다고 우리 사회가 변화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하면서 연합운동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대신에 개인의 신앙 성숙과 인격 변화를 위한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한국교회를 성숙시키는 데 큰 기틀이 됐다. 그러나 반대로 개교회 성장과 각개전투식 사역을 하면서 점점 한국교회의 결집력이 사라지고 대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해 버렸다. 또 공동체 신앙과 연합운동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신앙의 개인주의화가 팽창했다. 즉 귀중한 하나를 얻은 대신에 또 다른 귀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교계가 어려움을 당해도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나만 문제없고 내 교회만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몇몇 대형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도 그것이 내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교계가 분열하고 상처 받을 때도 그것이 내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뒷짐 지고 방관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몇몇 교회와 교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무관심과 방관의 최후는 한국교회라는 공동체의 공멸이다. 모르드개도 하만의 계략으로 민족공동체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더에게 “너는 안전할거라 생각하지만 너와 네 아버지 집도 멸망할 것”이라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아픔에 적극 동참할 것을 권면하지 않았던가.
특별히 우리 민족은 공동체 사상이 약하다. 지금도 정파와 계파, 보수와 진보, 지역과 세대로 나뉘어 얼마나 불필요한 갈등을 겪고 있는가. 교회는 더 그렇다. 교회와 교계가 사분오열되어 서로 싸우다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절실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목회자들에게 연합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나는 외부 행사에는 일절 참여 안 한다, 아니 관심도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집합적 인격체요, 언약공동체가 되지 않았는가. 어떻게 내 교회 일이 아니라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될 수 있는가. 이제 한국교회 안에 공동체 신앙과 연합운동의 정신을 회복하자. 그 길만이 한국교회라는 거대한 함선의 좌초를 막고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는 길 아니겠는가.
소강석 목사(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