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만에 사라지는 영등포 ‘대림시장’ 가보니 상인들 “대형마트 공세에…” 장탄식
입력 2012-08-26 22:08
26일 오전 찾은 서울 대림동 대림시장 입구엔 간판이 붙어있던 흔적만 남아있었다. 시장 간판은 이미 두 달 전에 철거됐다. 불 꺼진 점포마다 ‘완전폐업’이라고 쓰여진 종이가 붙어있었고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열 곳 남짓의 가게는 ‘떨이’를 하고 있었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대림시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상인들은 “시장이 죽어가기 시작한 게 벌써 20년이 다 돼간다”고 한숨지었다.
전통시장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자구책을 찾지 못한 전통시장들이 대형마트와 SSM의 등장에 밀려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1968년 문을 연 대림시장은 수익 악화로 지난 4월 경매에 넘어가 44년 역사를 뒤로 하고 오는 31일 영업을 종료할 예정이다.
한때 점포 수가 200개에 육박했던 대림시장에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감돌고 있다. 점포들이 이사 나가면서 버리고 간 쓰레기더미가 여기저기에 수북이 쌓여 있다. 상인들이 가게를 비우고 나면 대림시장 자리에는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이 들어선다. 40년간 이곳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해온 김길자(여·68)씨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재래시장을 원하지 않은 지 오래”라며 “점포들 중 상당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대림시장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정규환(여·66)씨의 신발가게는 폐업 정리 세일 중이었다. 정씨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서서히 줄어들어 이미 점포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폐업이 결정된 것”이라며 “주변에 대형마트가 생겼으니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이 죽어가는 것을 단순히 대형마트가 생긴 탓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대림시장에서 40년 가업을 이어 장사를 하고 있는 김윤순(여·56)씨는 “시장이 오랫동안 퇴로를 걷고 있었지만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며 “시설 투자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대형마트 탓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까운 곳으로 가게 옮길 자리를 봐놨지만 몇 십 년 단골이 떨어져나갈까 걱정돼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 앞에서 26년째 구둣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길태(75)씨는 “주변에 대형마트는 늘어나는데 주차공간조차 마련하지 않으니 누가 이 시장을 찾겠느냐”고 혀를 끌끌 찼다.
2005년 이후 대림시장처럼 사라져버린 전통시장은 무려 140여 곳이다.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서울 을지로4가 방산시장, 공덕동 마포시장 등도 폐업하는 점포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주부 김은숙(49)씨는 “예전에는 집 가까이에 채소나 생선을 싸게 살 수 있는 시장이 있어 장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시장이 점점 없어져 아쉽다”며 “대형마트에 없는 품목을 개발하고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시설과 문화를 갖추는 등 전통시장을 활성화할 방안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