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김용우] 우파인가 좌파인가

입력 2012-08-26 19:20


지난 14일은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의 취임 백일 잔칫날이었다. 17년간이나 지속된 우파의 장기 집권을 끝냈고, 뒤이은 총선에서도 좌파의 승리를 주도했던 그였기에 지지자들의 기대도 그만큼 컸다. 그러나 좌파 대통령의 잔칫날은 기대만큼 흥겹지 못했다. 잔칫날의 흥을 깬 것은 파리에서 약 120㎞ 떨어진 유서 깊은 도시 아미앵에서 날아든 급보 때문이었다. 아미앵 북부 교외에서 13일 밤 내내 그 지역 주민들과 경찰 사이의 격렬한 대립이 발생했던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해 보인다.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20세 젊은이의 장례식에 참가하려던 한 사람이 위험하게 차를 몰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이에 격분한 주민들이 경찰과 맞서기 시작했다. 결국 약 100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한 젊은이들과 150명가량의 경찰 사이에 과격한 충돌이 벌어지고 말았다. 흥분한 시위대는 차량뿐 아니라 유치원, 스포츠센터 같은 공공건물에 불을 질렀고 진압하려는 경찰을 공격해 16명의 경찰이 부상하는 대규모 폭력 사태로 악화되었다. 다행스럽게도 14일 이후 아미앵 교외는 안정을 찾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의 보도를 접하면서 2005년 가을부터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던 대규모 시위 사태의 악몽을 떠올린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 일부 대도시 주변 지역에서 폭력적인 시위와 봉기가 발생한 것은 멀리 1980년대로 소급된다. 따라서 2005년의 사건은 지역적이고 산발적이던 것이 전국적인 규모로 격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2005년으로 유사한 사건이 종말을 고한 것도 아니다. 지난 13일의 아미앵 사건은 이런 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상 프랑스 교외 지역의 문제는 식민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교외 지역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알제리를 비롯해 한때 프랑스 식민지 출신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프랑스로 넘어와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의 주변에 판자촌을 짓고 산 것은 1900년대 초반이었다. 이제는 식민지 이주민의 2세, 3세가 주민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었다는 사실 외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들의 삶은 전반적으로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미앵 북부 지역의 청년실업률이 5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예다. 여기에다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프랑스인들의 인종주의적 편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프랑스 교외 지역의 문제는 이처럼 깊고 넓은 연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미앵 사건에 대한 프랑스의 좌파 정부가 보낸 첫 반응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러한 폭력 행위와 싸울 것”이라는 올랑드 대통령의 단호한 태도는 그렇다 하더라도 “치안은 우리에게 급선무일 뿐 아니라 의무”라고 선언한 대목에 와서는 그와 전임 우파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와 아무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 사태를 방관하거나 미화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아미앵 사건의 핵심은 폭력 사태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지역을 프랑스 전국에서 선정될 15개 ‘치안 최우선 지역’, 즉 가장 위험한 우범지역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고 경찰력을 대폭 증강하고 투입하는 일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1980년대 이후 빈발하는 사건들 자체가 웅변한다.

17년 만의 좌파 정부 탄생을 기뻐한 사람들은 프랑스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대책을 기대했을 것이다. 비록 당장 인기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태의 본질에 깊숙이 파고들어가 장기적 안목에서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차별을 줄이려는 시도가 없다면 지금의 좌파 정부와 이전의 우파 정부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용우 호모미그린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