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무서운 치료비] 癌환자는 육체적 고통 가족은 ‘비급여 고통’
입력 2012-08-24 18:58
여름비가 세차게 내리던 21일 오전 5시30분, 부부는 새벽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충남 천안에 사는 부부는 2주에 한 번씩 서울의 병원을 오간다. 지하철로 왕복 4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한 번 병원에 다녀오면 2주치 약값으로 150만원이 부서져나간다. 한 달이면 300만원. 그래도 병세가 더 악화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위로를 삼는다.
2006년 겨울, 남편 김재민(가명·51)씨는 피가 섞인 소변을 봤다. 심한 통증에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4개월 동안 크고 작은 병원을 전전하다 이듬해 4월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이 급했다. 한쪽 신장을 떼어 내는 대수술을 했다. 암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사라진 건 아니었다. 곧 갑상선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2010년 4월 갑상선암 수술을, 그해 10월 이번에는 기도를 뚫는 수술을 받았다. 암세포가 기도를 눌렀다고 했다. 암세포는 재빨랐고 치료는 늘 한 발짝씩 늦었다.
‘암’이라는 재앙이 밀고 들어오기 전 김씨네는 부족한 것 없는 중산층 가정이었다. 중소기업 중간 간부인 김씨, 유치원 교사인 아내,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착실한 두 아들. 하지만 김씨가 아픈 뒤 삶은 달라졌다. 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암이 전이되면서 약값만 한 달에 300만∼400만원씩 들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졌다. 적금을 깨고 마이너스 통장을 손에 쥐었다. 김씨의 약은 언제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쓰던 약이 건강보험 적용이 될 때쯤이면 내성이 생겨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신약으로 바꿔야 했다. 아내 최은수(가명·50)씨는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렇게 번번이 보험 적용을 피해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시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됐다. 최신 기술의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다. 1주일에 다섯 차례 10∼15분씩 진행되는 치료는 몸을 부수는 듯한 고통을 줬다. 여기에 2000만원 넘는 치료비까지 부부의 마음을 짓눌렀다. 건강보험이 안 되는 치료였다. 암 보험을 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보험료가 저렴한 탓인지 받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투병생활 6년째. 친척들의 도움도, 마이너스 통장도 한계에 이르렀다. 김씨 부부는 이제 집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있다. 천안의 35평 아파트를 팔고 작은 전셋집으로 옮기면 잠깐 버틸 치료비는 마련할 수 있다.
암 환자인 김씨는 지금도 일을 놓지 않고 있다. 남편, 아버지이자 가장인 김씨는 돈을 벌어야 했다. 일을 할 때만이라도 암 환자라는 생각을 잊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아내는 아픈 남편이 계속 일을 해야 하는지 날마다 고민한다.
아내 최씨의 바람은 한 가지다.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약값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치료받는 것이다. 남편의 암은 최근 뇌까지 닿았다. 최씨는 “약값 보험만 된다면 이렇게 궁핍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돈이 없어 치료조차 못 받는 상황이 올까봐 늘 마음을 졸이고 산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