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대이동] 기러기 생활? 서울 출퇴근?… 고민깊은 관가
입력 2012-08-24 18:28
멀게만 느껴지던 정부부처의 세종시 입성이 어느새 올해 말로 다가왔다. 총리실은 다음 달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국토해양부 등 5개 부처와 6개 산하기관도 12월 말까지 옮겨간다. 내년이면 이른바 ‘정부세종청사’ 시대가 시작된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제대로 안 돼 각 부처는 물론 현장으로 내려가는 공무원들도 혼란스러울 뿐이다.
세종시 이전이 코앞에 닥쳤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거의 없다. 정부부처 업무 운영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막막하다. 공무원들의 개인적 삶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수만 4000명, 가족들을 생각하면 1만명 안팎의 삶의 변화가 향후 4개월 안에 이뤄져야 하지만 대부분 아직 ‘고민 중’이다. 3∼4년 뒤면 세종시가 주거는 물론 교육 측면까지 꽤 좋은 자치 신도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지만 당장은 허허벌판이다.
◇‘먼저 떠나는’ 자들의 생존전략=기재부 A사무관은 현재 세종시에서 정부중앙·과천청사 사이를 운행하는 통근버스를 이용하는 ‘역(逆)출근’족이다. 지난 6월 첫 입주 아파트를 분양받은 터라 부처보다 먼저 세종시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려니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통근버스가 있어 나은 편이다. 상당수 아파트가 2013년 하반기∼2014년 입주가 시작되는데 내년에 부처들이 이사한 뒤로는 아예 통근버스도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 노조는 통근버스 운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공무원 가족 이전을 권장하는 정부는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상당수 공무원들은 입주 때까지 남은 1∼2년을 세종시 인근에 세를 구해 살지 서울에서 출퇴근할지 고민만 거듭하고 있다.
그나마 가족과 함께 이주하는 이들은 속이 편한 쪽이다. 자녀가 중·고등학생이거나 맞벌이인 공무원들은 상당수가 ‘기러기 생활’을 해야 한다. 총리실이 올해 세종시 이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혼자 이주한다는 공무원은 41%, 출퇴근하겠다는 사람도 12%나 됐다. 공정위 B국장은 “국장들은 앞으로 5년 정도만 있으면 퇴직하는 데다 국회 등 관련 업무로 서울에 있을 시간도 많아 대부분 혼자 내려간다”면서 “과장급도 대부분 자녀가 중·고생이어서 혼자 내려간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1차 분양을 받은 사람을 제외하면 거주지 마련도 발등의 불이다. 세종시내는 아직 대부분 공사 중이고 생활 여건도 녹록지 않은 상황. 그래서 세종시에서 가까우면서 생활여건이 괜찮은 대전 유성이나 충남 조치원에 거주지를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장·차관들도 관사 완공까지 시간이 걸릴 예정이라 당분간은 셋방살이 신세가 불가피하다. 비용도 고민이다. 두 집 살림을 하면 생활비가 100만원은 더 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 지원은 없다.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이전에는 2년간 월 20만원 정도의 이주비 지원이 있지만 세종시 이전 공무원들은 이사비용만 지원된다. 한 과장은 “당장 내려가야 하는 1차 멤버들은 현지 정보도 거의 없어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서 “초기 시행착오 기간은 뭔가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떻게든 내려갈 시점을 늦추려는 전략들이 속출한다. 대표적인 게 차기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 입성이다. 인수위에 들어가면 이후 청와대 입성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에 남는 각종 위원회도 마찬가지 선호대상이다.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 세종시에는 보육시설은 물론 초등학교도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사무관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대상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최대 2년의 휴직을 활용해 현지 상황이 좀 정리된 이후 내려가는 방안 등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업무 시행착오도 불가피=각 부처마다 이사할 공간에 대한 고민부터 청와대, 국회 상대 업무 등을 위한 서울 업무 공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산적해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정위처럼 실무 지방조직이 있으면 서울청을 다소 확대, 활용하는 게 가능하지만 우리는 아직 대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기재부 예산실은 아예 제대로 된 이사가 내년 1월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예산안 처리 때까지는 국회에 매달려야 하는데 올해는 대선까지 있어 예산안 처리가 12월 말에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총리실이 이전하고 나면 총리실 주관으로 열리던 국무회의는 어떻게 되는지, 물가관계장관회의 같은 각종 관계부처 회의는 어떻게 운영할지 등도 해결할 과제다. 정부 관계자는 “서울청사와 세종청사를 번갈아가며 회의하는 방안부터 영상회의, 격주회의 등 다양한 아이디어는 나오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며 “올 연말부터 내년까지는 이래저래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