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무서운 치료비] 健保로는 턱도 없다
입력 2012-08-24 18:21
사(私)보험의 덩치가 나날이 불어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떨어지고 개인 부담금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사람들은 “건강보험 가지곤 턱도 없다”며 앞다퉈 민영의료보험으로 달려간다. 사보험 시장 규모는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건강보험을 압도한 지 이미 오래다. 반면 건강보험은 재정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료 ‘폭탄인상’에 소비자 민원만 급증하고 있다.
23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합친 민영 보험 규모는 지난해 146조5834억원에 이른다. 건강보험(32조9221억원)의 4.5배다. 생명보험만도 83조74억원으로 건강보험의 2.5배 규모다. 국민 5명 중 4명이 민영 보험을 한 가지 이상 가입한 상태다.
민영 보험 급증 배경엔 건강보험만으론 안 되겠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아이를 적게 낳고 오래 사는 데다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한몫 했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최근 한국의료패널 소속 6798가구(2만1182명)의 2009년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가입했다는 사람이 46.27%로 절반에 육박했다. ‘건강보험의 서비스 보장이 부족해서’라고 응답한 사람도 34.87%였다.
그러나 민영 보험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민영 보험 중엔 보험금 지급 기준이 까다로워 한 가지 요건만 못 채워도 보험금을 주지 않는 상품이 적지 않다. 또 통원치료비는 보통 6개월까지만 보상해준다. 장기간 치료받아야 하는 만성질환자에겐 반쪽짜리 상품인 셈이다.
여기에 민영 보험은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 가입률이 낮다는 한계도 있다. 민영 보험 가입률은 30·40대가 80%에 육박한 반면 70대의 가입률은 2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약한 사람과 고령자는 걸러내고 건강한 사람만 가입시키려는 보험사 생리 탓이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민영 보험 민원은 2007년 8614건, 2008년 9301건, 2009년 1만2350건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특히 실손의료보험 관련 민원이 많다고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전했다. 실손의료보험은 의료비 중 정부가 부담하지 않는 금액의 90%를 보상하는 상품이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매년 300만∼400만명이 가입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 기준으로 집계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중복 가입자를 포함해 2790만명이다. 금감원은 중복 가입자를 빼도 국민 절반인 2500만명은 넘을 것으로 본다.
실손의료보험은 3·5년마다 보험료가 갱신되고 보장 범위가 바뀐다. 이 보험에 대한 불만은 30∼40%대에 이르는 높은 인상률에 집중돼 있다. 삼성화재 등 11개 손보사가 예로 든 실손의료보험 상품의 가입 3년 후 보험료 인상률은 평균 34.1%, 두 번째 갱신 시점인 6년 후 평균 인상률은 40.9%였다. 한 외국계 보험사의 실손보험에 가입한 30대 여성은 보험료가 5년 만에 200% 이상 올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작 의료비가 많이 들고 소득은 없는 노후엔 비싼 보험료 때문에 보험을 해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험사들은 높은 손해율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한다. 실손의료보험은 민영 상품이라 홍보비나 설계사 수수료 등 사업비가 들어간다는 점도 강조한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은 2008년 102.0%, 2009년 109.6%, 2010년 115.1%로 매년 상승한다. 하지만 실손의료보험 손해율 증가는 보험사끼리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초기 보험료를 낮게 매긴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