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무서운 치료비] 병원 꼼수, 비급여의 덫… “아파도 참아야죠”

입력 2012-08-24 18:16


2010년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이들 100명 중 18명은 이렇게 말했다. “병 치료하다가 극빈층으로 떨어졌습니다.” ‘의료비 지출’은 실직(29%), 수입 감소(22%)에 이어 기초생활수급자 편입 사유 3위였다. 기초생활수급자 82%, 차상위계층 93%, 일반국민 78%는 2009년 한 조사에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비 무서워 아파도 참습니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크론병을 앓고 있는 박성민(43·가명)씨는 몇 달째 수술을 미루고 있다. 장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보다 박씨는 병원 가는 일이 더 겁난다. 그가 다니는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면 무조건 1인실부터 입원해야 한다. 하루 병실료가 50만원. 3일만 입원해도 박씨가 운영하는 공장 직원 1명의 월급이다. 고작 직원 3명의 월급도 제때 주지 못하는 영세업체 사장인 박씨에게 수술은 언감생심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10년 기준 62.7%다. 박씨 사례에서 보듯 6인실 미만 상급병실 이용료 등 건강보험 혜택이 닿지 않는 고액의 ‘비급여’ 진료비를 감안하면 실제 보장률은 58%로 떨어진다. 의료비 걱정에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이들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까닭은 환자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진료비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비급여 진료비는 병원에서 부르는 게 값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비급여 중 가장 큰 비중은 선택진료비(26.1%)가 차지하고 있다. 박씨처럼 대형병원을 찾는 중증질환자 대부분은 ‘선택의 여지없이’ 선택진료비를 내야 하는 특진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는다. 특진을 받으면 각종 검사료에도 선택진료비가 추가된다.

차의과대 지영건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선택진료제도의 지불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선택진료비 추정액은 1조1113억원에 이른다. 대형병원의 가장 큰 수입원이고 환자들에게는 가장 큰 부담이다.

상급병실차액 문제도 심각하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6인실 미만 병실에 입원하면 병실료 차액은 본인이 내야 한다. 예를 들어 2인실 병실료가 25만원, 6인실 병실료가 2만원이면 23만원은 환자 부담이다. 병상부족을 이유로 대형병원에서 입원 초기 환자에게는 예외 없이 상급병실이 배정된다. 상급병실차액으로 인한 병원 수익은 연간 9723억원으로 추산된다.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비급여 검사 항목비도 환자의 목줄을 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지난 5월 발표한 ‘의료기관 비급여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부 대형병원의 전신 MRI 촬영료는 100만∼120만원에 이를 만큼 고액이다. 이런 비급여 검사비는 항목에 따라 연간 5∼25%씩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값비싼 신약에 목숨을 걸고 있는 암환자나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은 비급여 약값 때문에 괴롭다. 이들은 건강보험만 적용되면 진료비와 약값의 5%만 부담하면 되지만 치료가 되는 약은 보험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한 희귀난치성환자 보호자는 “1년에 약값만 2000만원 넘게 들지만 살려면 그 약밖엔 방법이 없으니 하루빨리 건강보험이 적용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비 지출이 연간 가처분 소득의 40%를 넘는 경우 ‘재난적 의료비’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도 재난적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득 계층에 따라 연간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상한액을 200만∼400만원으로 정해놓고 있다.

이기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장은 “선택진료비 제도를 없애고 상급병실 기준을 4인실로 바꾸면 보장률이 약 5%포인트 올라간다”며 “비급여 항목을 순차적으로 보험적용시키고 본인부담 상한액을 낮추면 5년 뒤 80% 가까운 보장률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