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대산교회] 하나님 나라, 우리 손으로 세워야지
입력 2012-08-24 17:56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논밭이 펼쳐져 있는 농촌 풍경이 차창 밖으로 한동안 이어지다가 짙푸른 소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마을 어귀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어 청림(靑林)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
경남 거창군 남상면의 청림마을에선 시원한 솔향기가 배어나왔다.
솔숲 뒤편으로 인적이 드문 좁은 길을 10분쯤 따라가면 빽빽한 소나무 숲에 가려져 있던 십자가가 보인다.
선비 마을에 파송된 할머니 크리스천
“어서오이소.”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닌 이증숙(78) 할머니는 지난 13일 기자와 만나 “미신을 없애라꼬 하나님이 날 이 마을로 파송하신 기라”며 얘기를 꺼냈다. “왜정시대에는 지금 구역예배 하듯이 일본 사람들 몰래 몇몇이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아무것도 모리고 할매 따라가 참석했다 아이가.”
이 할머니는 1953년 6·25전쟁이 끝난 뒤 경북 김천시에서 청림마을 옆 대현마을로 시집을 왔다. 당시 시댁과 종교가 달라 맘고생이 심했다. 대대로 유교를 숭상해온 양반 가문의 둘째 며느리가 예배당에 가는 일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이 할머니는 “시아부지 제사를 모시는데 내가 예수님을 믿으니까 일찍 돌아가신 것도 서러번데 제삿날에 음식도 몬 잡수신다캤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교회를 함께 다닐 ‘믿음의 동지’는 물론 없었다. “예수쟁이 핍박하는 분위기가 아주 엄청났지. 영감님이 ‘성경책 사다줄 테이 당분간 집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나마 그 양반이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해 천만다행이구만.”
호주 선교사들이 1914년 이 지역에 처음 복음을 전했지만 당시 마을 사람 대부분은 무속신앙을 믿거나 절에 다녔다. 460여년 전 조선시대 선비들이 터를 잡아 형성된 마을에 복음을 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99년 10월 대산교회에 부임한 허운(51) 목사는 “청림마을과 가까운 감악산 등지에 아주 오래된 사찰이 있다”면서 “불교색이 짙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김병한(85) 할머니는 불교신자였다가 17년 전쯤 하나님을 만났다. 회심한 이유를 묻자 “마음이 즐겁고 편하니까. 찬송하면 좋고 목사님 보면 좋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굴 한구석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막내아들이 서른일곱 때 암으로 갔어. 그거 죽고 나서 내가 절에 댕겨서 죽었는가 싶어서 교회 나갔지. 생전 안 아프던 아가 갑자기 죽으니까. 지금이야 다 그냥 교회 많이들 댕기지만 옛날에는 무슨 어려운 일 있어야 교회에 나갔지.”
17세 때 대현마을로 시집을 온 김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새벽예배에는 출석하지 못하지만 젊은 성도 못지않게 열성적으로 믿고 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은 잘 몰래도 찬송가는 종이에 써서 만날 주무이에 갖고 댕기니까 쪼매 할 줄 알지”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옆에 있던 허 목사에게 “만날 날 델로 오니까 아들보다 낫소”라면서 “이제 권사시켜 주이소, 목사님”이라고 농을 쳤다. 허 목사는 “그러면 명예권사님 하시면 되겠네요”라면서 웃음으로 답했다.
대산교회를 가장 오래 다닌 성도는 조복순(85) 할머니다. 그는 교회의 모든 예배에 거의 빠지지 않는 ‘명예권사’이다. “50년 전쯤 시어무이 따라 논두렁길 걸어가 교회에 댕겼지. 하나님이 계시니까 좋은 거 아이가.”
첫째 며느리 이계남(59)씨는 “어머님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데도 항상 성경을 펴놓고 보신다”면서 “오래 교회에 다니셔서 그런지 어떤 찬송가는 4절까지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부르신다”고 했다. 조 할머니는 가장 자주 부르는 찬송이라면서 ‘내 주의 보혈은’을 시작했다.
조 할머니는 “자식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게 가장 섭하다”면서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했다. 장남 정범석(60)씨는 “농사 때문에 시간내기가 좀…”이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농촌을 살려야 농촌교회가 산다
메주·된장 공동판매, 녹색체험마을 운영, 복지센터 가동….
대산교회는 적극적으로 농촌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농촌 경제를 살리지 못할 경우 농촌교회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 때문이다. 허 목사는 “자립이 어려운 농촌지역 목회는 특수 목회의 성격을 띤다”면서 “시골 지역의 한계를 탓하고 포기할 게 아니라 교회뿐 아니라 그 지역을 살리는 목회를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산교회의 선교 지역은 경남 거창군 남상면에 있는 청림·대현·괴화마을 등 10곳, 500여 가구다. 복음화율은 6%를 밑돌고 교회에 꾸준히 나오는 성도는 4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은 데다 지역 경제가 나빠지면서 성도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허 목사가 대산교회와 청림마을을 모두 살리는 방법으로 처음 시도한 것은 메주 판매 사업이었다. 2000년부터 성도들과 함께 이곳에서 생산되는 콩으로 메주, 된장, 간장 등을 만들어 팔고 있다. 현재 1년 수익은 300만원 정도로 미미하지만 허 목사의 비전은 분명하다. 그는 “기대치에는 아직 훨씬 못 미친다”면서 “하지만 메주 생산방식을 좀 더 현대화해 앞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메주를 공동 생산·판매하는 일은 지난해 ‘솔향담은 장마을’ 사업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교회를 중심으로 해왔던 메주 만들기에다 모심기, 콩 심기, 소나무 심기, 소 먹이주기, 고구마 캐기 등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접목한 것.
솔향담은 장마을 사업은 지난해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2억원을 지원받았고, 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체험관이 지난해 12월 세워졌다. 최근까지 체험관을 다녀간 사람은 200여명이다.
오래 전부터 메주 판매 사업을 해온 데다 인맥이 넓다는 이유로 허 목사가 이 사업의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허 목사는 “지원받은 2억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막상 건물을 짓고 장독대를 사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넉넉하지는 않았다”면서 “앞으로 도시교회 성도들이 청림마을로 내려와 예배도 드리고 농촌체험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요양시설 짓기 위해 기도중
대산교회는 또 2007년부터 남상재가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요양보호사 월급의 일부를 지원받아 홀로 사는 노인들을 돕는 것이다. 이 같은 복지활동에는 어려운 어르신 집으로 찾아가 빨래와 청소를 해주고 건강을 챙겨드리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한다는 선한 의도가 깔려있다. 허 목사는 “앞으로는 환경이 열악해 집에서 머무르기 어려운 어르신을 모셔와 돌봐드릴 수 있는 요양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대산교회는 또 5년 전부터 남상면에 있는 다른 교회 3곳과 함께 반찬을 만들어 어려운 가정에 배달해주는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형태의 농촌 목회를 펴고 있는 허 목사는 오래전부터 농촌 목회의 꿈을 꿔왔다.
“제가 제주도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농촌 목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복음을 전하기 힘든 농촌지역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집단 농경 공동체인 키부츠와 비슷한 농촌마을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비전까지 세웠죠.”
농촌 복음화라는 뜻 깊은 계획을 세웠지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허 목사 스스로도 열악한 환경 탓에 마음이 흔들리는 때가 있었다. 이전 교역자들이 몇 년 견디지 못하고 떠날 정도로 이곳 농촌 상황이 피폐했기 때문이다. 허 목사가 2001년 교회 사택을 처음 지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저 목사님은 금방 안 가고 살라나 보네”라고 했다.
“농촌 목회에 희망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젊은 사람이 없는 시골에 오래 있다보니까 저조차도 포기하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여러 활동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여러 사업에 관여하다 보면 정작 목회의 본질을 놓치지 않겠느냐고 허 목사에게 물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는 모두 같은 목회 사역”이라며 “농촌지역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선 교회와 지역이 함께 호흡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말씀에 크게 힘을 얻고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허 목사는 서울 광장동 장로회신학대학원을 87년 2월 졸업한 뒤 경남 진주시 진주교회, 서울 중곡동교회 등지에서 사역을 하다 99년 대산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농촌지역에서 목회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청림마을을 시작으로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농촌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담당하는 새로운 비전을 꿈꾼다”고 말했다.
▶ 대산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동서울터미널에서 거창행 버스를 타야 한다. 거창버스터미널까지 3시간30분쯤 걸린다. 터미널 앞에서 택시로 10분쯤 이동하면 청림마을에 들어갈 수 있다.
서울역발 김천(구미)역행 열차(KTX)를 타는 방법도 있다. 김천역까지는 1시간30분쯤 걸린다. 김천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20여분 가면 김천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이후 거창행 버스를 탑승, 1시간 정도 달리면 거창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거창=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