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잘못 꾸는 꿈’이 없는 세상

입력 2012-08-24 17:38

곧 개강입니다. 멋모르는 초짜 선생이던 시절에는 마냥 설레던 강단이 이제는 점점 두려워져요. 반짝이는 눈동자와 눈부신 젊음을 하고서 사랑스럽게 제게 달려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마주하기 힘겹습니다. 격려하고 지지하기엔 그 아이들의 꿈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걸, 개인의 재능과 성실성으로 극복하기엔 너무나 큰 현실적 장벽들이 놓여있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학자가 되고 싶다고, 전공을 더 공부하고자 유학도 가고 싶다고 꿈을 펼치는 졸업반 아이에게, 전 조심스레 빌딩청소를 하시는 외벌이 아버님이 곧 은퇴시지 않느냐고 은근슬쩍 ‘일단 취직’을 권했습니다. 혼자 등록금 벌어 대학 다니느라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7년 만에 겨우 학부를 졸업한 아이가 제게 전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듣다가, 그건 ‘잘못 꾸는 꿈’이라고 거의 말할 뻔했습니다. 겨우겨우 그 잔인한 말을 목구멍에 도로 삼키면서 ‘그래, 기도하며 길을 찾아보자’ 말하는 것이 저의 최선이었습니다.

꿈에… 잘못이 어디 있을까요. 잘못이 있다면, 재능 있는 아이들이 더 날고 싶어 하는 꿈을 ‘잘못 꾸는 꿈’이라고 말하는 세상이, 그런 세상을 만든 우리 어른들이 잘못이겠죠. 경건한 영국 목사요 시인이었던 조지 허버트의 말로 기억합니다. 꿈을 상실할 때 인간은 죽기 시작한다고… 그래서 자꾸 우리의 꽃 같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단에서 다시 희망과 격려의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냥 듣기 좋게 사탕발림 같은 말, 책임질 수 없는 위로의 말들만을 건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성실성과 재능만으로 아이들이 꿈을 이루는 그런 세상을… 그 모든 꿈을 가능케 하는 세상을 만드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제도란 “공동체가 합의한 같이살기의 방식”이랍니다. 교육제도, 정치제도, 경제제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쳐서라도 아이들을 향해 ‘잘못 꾸는 꿈’이라 말하는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병 주고 약주는 것보다는 그게 근본적인 치유일 테니까요.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