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천덕꾸러기 나라紋章
입력 2012-08-24 18:50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런던올림픽에서 종합 5위(금메달 기준)를 기록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투혼은 다시 봐도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메달을 땄든 못 땄든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결과다.
태극마크는 운동선수 누구나 꿈꾸는 바람일 것이다. 런던올림픽을 보면서 의아한 것은 국가대표라고 해서 모든 나라 선수들이 그 나라 국기가 아로새겨진 유니폼을 입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기를 대신해 나라의 문장(紋章)을 국가 상징으로 삼는 나라가 적지 않았다. 독일을 비롯한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그랬다. 중국도 오성홍기 외에 천안문 위에 다섯 개의 별이 그려진 국가문장으로 디자인한 여러 형태의 운동복을 선보였다.
런던올림픽은 국기뿐 아니라 국기를 응용한 디자인, 나라문장 등 다양한 국가 상징물로 나라를 홍보하는 치열한 경연장이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천편일률적으로 가슴 아니면 어깨에 태극기를 단 단복과 운동복을 착용했다. 깨서는 안 될 불문율로 굳어진 느낌이다.
지난주 제67주년 광복절 주간을 맞아 서울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행정안전부가 대한민국 5대 상징-국기(태극기), 국가(애국가), 국화(무궁화), 나라도장(국새), 나라문장-관련 자료들을 한데 모아 연 ‘대한민국 국가상징 기록전’이다.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다.
경외의 대상에 그쳤던 태극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패션 아이템으로 변신하며 친숙한 대상이 됐다. 그러나 태극기와 함께 국가 홍보에 널리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나라문장은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반인들은 어쩌다 사용하는 여권을 봐야 겉면에 새겨진 나라문장을 접할 수 있다.
흰머리수리로 상징되는 미국의 나라문장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미국 관련 뉴스를 볼 때 자주 보기 때문이다. 흰머리수리 하면 미국을 떠올릴 정도로 미 정부가 활용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독립 직후 수년에 걸쳐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여론 수렴을 통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라문장에 대한 미국민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우리 정부도 일찍이 그 필요성을 인식해 1949년 ‘나라문장 규정 문서’를 펴낸 데 이어 1963년 무궁화꽃이 태극 문양을 감싸고 있는 형태의 나라문장을 제정,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다. 나라문장은 1급 이상 공무원의 임명장, 훈장·훈장증 및 대통령 표창장, 국가공무원 신분증, 국공립 대학교의 졸업증서 및 학위증서, 재외공관 건물, 정부소유 선박 및 항공기, 화폐 등에 사용할 수 있다고 대통령령(나라문장 규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구한말 대한제국은 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문(李花紋)’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화폐와 우표에 새겨 넣어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하지만 지금 국가문장은 의도하지 않고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나라문장을 활용하려는 정부의 움직임도 없다.
나라문장이 외면당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련미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어떤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 제정됐는지도 불분명하다.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5대 국가상징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국민과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자는 입법 논의가 활발하다.
이 기회에 나라문양을 태극기에 견줄 수 있는 국가상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나라문양을 변화된 국민 의식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길 기대한다.
이흥우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