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번 현장 누빈 ‘영업통 덕장’ 1회성 실적쌓기 없앤 ‘뚝심의 용장’

입력 2012-08-23 22:08


2010년 금융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모피아(옛 재경부 출신 금융관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KB국민은행장과 IBK기업은행장에 처음으로 내부 출신 인사가 임명된 것. 각각 개인금융과 기업금융에서 독보적 지위를 가진 두 은행장이지만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취임 일성으로 중국 삼국시대 유비를 모시던 제갈량의 출사표를 인용했다. 제갈량이 유비를 군주로 모시고 현장에서 목숨을 던졌던 것처럼 본인도 지주회장 밑에서 현장 경영에 전념하겠다는 의미다. 사실상 IBK금융그룹의 ‘회장’인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조선왕조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세종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갈량’과 ‘이방원’의 지난 2년간 성적표는 어떨까.

민 행장은 전형적인 덕장(德將)이다. 후배들이 “오죽하면 이름에도 덕(德)자가 들어갔다”고 말할 정도다. 임직원이 동요하면 포용하며 내실을 다지는 데 처음 1년을 보냈다.

그렇다고 영업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영업통’인 민 행장은 일하는 데 사비를 아끼지 않아 행장 취임 이후에도 억대의 빚을 지고 있다. 은행장이 되기 전에는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전용면적 82㎡ 아파트에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부모님과 자녀가 방을 쓰고 민 행장 내외는 거실에 커튼을 치고 잠을 잤다고 한다. 살림이 적자를 면치 못하니 부인이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며 내조했을 정도다. 민 행장은 지금도 서울 강북(종암동)에 사는 유일한 시중은행장이다.

그는 2010년 취임 이후 최근까지 350여개 영업점과 380여개 거래 기업체를 방문했다. 하루에 1∼2곳씩 현장을 누빈 셈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비공식적인 방문 일정까지 포함하면 은행업이 시작된 이래 역대 은행장 가운데 가장 많이 현장을 누빈 사람이 민 행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 행장이 어머니 역할을 했다면 조 행장은 악습부터 차단하며 엄한 아버지 역할을 자청했다.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실적을 위한 영업 캠페인을 없애는 것이었다. 조 행장은 “캠페인에 의한 실적은 사실상 허수(虛數)”라며 “의미 없는 실적으로 경영계획을 짜면 그것도 무의미해진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근무시간 정상화 지시로 8월 현재 영업점의 90% 정도가 오후 7시면 퇴근하고 있다. 모두 과거 외부 출신 행장들이 실적 저하를 우려해 시행을 주저했던 것들이다. 그 결과 기업은행은 수익성, 건전성, 성장성 등 모든 측면에서 은행권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은행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대비수익률(ROA)이 0.85%로 4개 경쟁 은행 평균치인 0.69%를 크게 앞섰다.

특히 방송인 송해를 내세운 광고 시리즈는 조 행장의 뚝심과 뛰어난 감각이 융합된 수작으로 평가된다. 은행 안팎에서 반대가 많았지만 그는 50대 이상 고객을 겨냥해 송해를 모델로 내세웠다.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내용의 광고 카피는 밤을 새우며 손수 작성하기도 했다. 결국 이 광고는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고 개인고객의 발길을 잡는 등 대박을 터뜨렸다.

첫 내부 출신 행장인 이들 두 행장의 성적은 양호하다. 민 행장은 취임 직후 3468억원 적자였던 당기순이익을 지난 2분기 4779억원까지 높였다.

조 행장은 취임 이후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내년에는 최고 금리를 과감하게 한 자릿수까지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으로 중기대출시장 점유율을 취임 초 20.77%에서 지난 2분기 22.18%까지 끌어올렸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