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위헌] 헌재 “악플 규제보다 표현의 자유 보호 더 큰 가치”

입력 2012-08-23 21:32


헌법재판소가 23일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악성 댓글 감소 효과는 미미할 뿐 표현의 자유만 과도하게 규제했다는 판단에서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개인정보 공개나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사례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본격 논의됐고 2007년 1월 17대 총선을 대비해 도입됐다. 본래 일일 평균 이용자 수 30만명 이상의 포털서비스 제공자, 일일 평균 이용자 수 20만명 이상의 인터넷 언론사가 대상이었다. 하지만 2008년 배우 최진실씨가 악성 댓글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듬해 1월 일일 평균 이용자 수 10만명 이상의 모든 웹사이트로 확대됐다. 인터넷 실명제 적용대상 웹사이트도 2007년 35개, 2008년 37개에서 2009년 153개로 확대됐고 올해도 지난 4월 131개가 지정됐다.

하지만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 이후 명예훼손 등 불법 정보 게시가 감소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우지숙 교수도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 논문에서 “실명제 실시 이후 게시글의 비방과 욕설 정도는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글쓰기 행위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헌재는 오히려 “인터넷에 익명으로 견해를 표현하는 것이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해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부작용이 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더 보호해야 할 가치라는 뜻이다.

헌재는 또 트위터, 페이스북 등 국내 법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해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받고 있는 역차별도 문제 삼았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처벌받지 않지만 같은 글을 국내 포털 게시판에 올리면 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도 위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헌재는 “인터셋 실명제로 포털 사이트 등이 본인확인정보를 보관해야 해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또 명예훼손 등의 글로 피해가 발생할 경우 다른 조항을 통해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 할 수 있고 게시판의 글을 읽으려는 사람에게도 본인확인 절차를 밟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고 언급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