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 공포] 경제난 속 무차별 화풀이… ‘한국형 훌리건’ 대책 없나
입력 2012-08-23 19:13
경기도 수원과 의정부에서 발생한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에 이어 국회 앞 대로변에서 행인들에게 무차별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까지 벌어졌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대부분 무직자거나 외톨이였다는 것이다. 의정부역에서 흉기를 휘둘러 시민 8명에게 상해를 입힌 유모(39)씨는 고립된 삶을 살아온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였다. 그는 친구는 물론 일정하게 머무는 집조차 없었을 뿐 아니라 휴대전화, 신용카드도 없었다. 여의도 대로변에서 흉기를 휘두른 김씨(30)는 3000만원의 빚을 안고 있는 신용불량자였다. 소외계층으로서 가지고 있던 현실 불만이 묻지마 흉기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들은 평소 범죄 성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돌변해 범행을 저질렀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마인드리스(Mindless·아무 생각 없는) 훌리거니즘’과 비슷한 형태로 보고 있다. 다만 훌리건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집단으로 표출되는 데 반해 사회 소외계층 범죄는 개인적인 형태로 표출됐다.
훌리건은 1960년대부터 보수당의 긴축재정에 불만을 품고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소외된 실업자와 빈민층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들의 특징은 지속되는 가난과 사회의 무관심으로 더 잃을 것도, 사회적 규범에 복종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원하는 것을 주장하기보다 ‘묻지마 화풀이’ 식으로 사회를 휘젓고 다닌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실업률 상승과 경제난 등 사회에 대한 저소득층의 불만이 깔려 있다. 결국 불황이 계속 될수록 삶에 대한 희망이 없는 소외계층이 늘어나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묻지마 범죄가 양산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서울지방경찰청 주최로 열린 ‘이상동기범죄 대응을 위한 학술 세미나’에서 일본 경시청 소속 도가시 스스무 협력관은 “일본에서 일어나는 ‘묻지마 살인’의 범인들은 대부분 20∼40대 남성이고, 무직이거나 비정규직이어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희박한 가족관계로 인한 열등감도 공통적이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에서 확고한 동기 없이 불특정인을 상대로 흉기 등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을 ‘도리마 살인’이라 부르는데 2001∼2010년 미수를 포함해 모두 67건이 일어났다. 도가시 협력관은 “도리마 살인을 주로 저지르는 히키코모리에 대한 상담과 훈련을 실시하고 정신장애인을 관리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일본은 이러한 히키코모리에 대한 대책으로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전국 29개)나 각 지역에 있는 보건소, 정신보건센터에서 히키코모리에 관한 상담이나 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상담 내용에 따라 교육기관, 자원봉사, 복지단체 등과 연계하면서 교육 훈련, 취업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소외된 계층의 잠재적 범죄에 대한 예방조치가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청 소속 한 경찰관은 “일본이 2000년대 중반 사회안전망이 약해지면서 낙오된 사람 가운데 범죄자가 많이 나온 것처럼 우리나라도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신적인 문제에 놓인 사람들을 먼저 학교에서 관리하고 이후 지역보건센터와 병원, 보건소가 개입하는 등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