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갈등 격화] 日 의회해산 앞두고 보수 표심잡기 치밀한 계산
입력 2012-08-23 19:05
치밀한 계산에 따른 행보인가, 여론에 끌려 걸음이 꼬인 것인가.
전날에는 “한국이 미래지향적 입장에서 사려 깊게 행동하는지 등을 예의 주시하겠다”(겐바 고이치로 외무상)고 하면서 한국을 향해 숨을 고르는 듯했던 일본이 23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 사과 요구를) 사과하고 발언을 철회하라”(노다 요시히코 총리)고 또 발언 수위를 높였다.
◇겉으론 강경, 속으론?=일본 정부의 반응을 살펴보면 실제적인 영토 문제인 독도보다 역사적·정서적 이슈인 일왕 문제에 더 격렬한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선거를 앞둔 일본의 정치상황을 대입해야만 설명이 된다. 독도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주로 극우 성향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만 일왕은 국민 전체의 정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작성한 의회 결의안에서도 독도 문제는 “하루 빨리 일본의 지배에 놓아야 한다”고 표현했지만 일왕 문제에선 “우방 원수의 발언으로는 매우 불손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하 관계에서 쓰는 ‘불손’이라는 단어를 외교 문제에서 사용한 것 자체가 국내용이란 증거다.
노다 총리의 사과 요구 발언도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열린 외교문제 집중심의회에서 야당인 자민당 시모무라 히로부미 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무기력한 지도력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외부를 향해 비정상적으로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셈이다.
일본은 내심 당황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요즘 경제적으로 존재감을 늘리는 한국에 대해 일본은 자신감을 잃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의 지위도 바뀌고 있고 인적 네트워크도 예전만 못하다”며 “한국에서는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 만큼 차기 정권을 내다보고 정치 외교 민간의 각 계층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탈출구?=일본 외무성의 스기야마 신스케 아시아대양주국장이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를 잇따라 방문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이 중국·한국의 외교 공세에서 빠져나올 탈출구를 찾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미우리신문 사설은 “한·일 관계 악화의 상처는 결국 두 나라에 돌아온다”며 “동북아의 안보 문제에서도 한·일 간 논쟁에 발목을 잡히면 북한을 이롭게 할 뿐”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미국이 한·일을 다시 묶어주고, 자신들이 점유하고 있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는 미·일 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확실한 수호 약속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역시 한국과 일본의 국내 정치상황이다. 대통령 선거와 의회 해산을 앞둔 두 나라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들의 감정을 추스르면서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지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