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의 풍경-박인환 선시집 뒷이야기] 1955년 초간본 발간… 인쇄소 화재로 대부분 불타

입력 2012-08-23 18:38


박인환은 1955년 10월 시인 장만영(1914∼1977)이 운영하던 산호장 출판사에서 ‘朴寅煥 選詩集(박인환 선시집)’을 냈다. 하지만 서점에 배포되기 전, 인쇄소 화재로 대부분이 불탔다. 장만영은 1956년 1월 초간본 판본 그대로 시집을 재발간한다. 초간본 표지는 하드커버에 호부장(糊付裝)인 반면, 재발간본은 소프트커버의 보급판 지장본이었다. 호부장은 제본할 때 옆을 매는 방식의 하나로, 속장을 철사로 매고 표지를 싼 다음, 표지째 함께 마무리 재단을 하는 제본 방식이다.

1995년쯤, 화가 황모씨로부터 ‘박인환 선시집’ 초간본을 입수해 보관하고 있는 고서점 호산방 대표 박대헌(59)씨에 따르면 “판권지의 발행 일자를 확인해 보니 ‘1955년 10월’이었다. 바로 화재 직전에 출판된 오리지널 판본이었다”며 “박인환이 시인 장호강에게 증정한 친필 사인이 있었고, 그 옆엔 코주부의 만화가 김용환이 직접 그린 박인환 캐리커처가 있었다”고 말했다.

23일 확인한 초간본의 면지와 속표지 그리고 뒤표지 면지 등에는 김광주 이진섭 송지영 박거영 차태진 김광식 조영암 등 당대 문인들의 친필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었고 ‘1월 16일’에 썼다는 기록도 있었다. “寅煥이 인환이가 冊가게에서 처음 만난 그 寅煥이가 十年을 하로같이 詩 속에서 詩를 찾으며 읊으며 용하게도 오늘까지 뻗혀왔다는 게 진정 반갑구나.”(소설가 겸 언론인 송지영의 축하 메시지)

이로 미뤄 1956년 1월 16일 출판기념회가 있었고 이 자리에서 지인들이 이 책에 축하 메시지를 쓴 것으로 보인다. 박인환은 화재가 나기 전, 초간본을 인쇄소로부터 직접 전해 받은 듯하다. 거의 유일본이라 할 ‘박인환 선시집’ 초간본엔 인간 박인환의 정취가 물씬 배어 있다.

박씨는 “황모씨가 이 오리지널 판본을 갖고 처음 찾아왔을 때 나는 안복(眼福)을 누린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으나 2∼3년 후, 그로부터 고서를 정리하겠다는 연락이 와 300∼400권의 문학서적을 함께 구입했는데 사실 ‘박인환 선시집’ 한 권 때문에 300∼400권의 책을 샀던 셈”이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