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8) 슬픔과 고독의 발명… 시인 김소연

입력 2012-08-23 18:30


매설된 깊은 감성을 타전하다

경북 경주에서 목장집 큰딸로 태어났다. 천칭좌. B형.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동네에서 사람보다 소 등에 업혀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눈은 소를 닮아 고장 난 조리개처럼 느리게 열고 닫힌다. 그 후 왕릉의 도시 경주를 떠나 서울로 이주했다. 줄곧 망원동에서 살았다. 우기 때마다 입은 비 피해가 어린 정신에 우울의 물때를 남겼다. 매일 지각했고 마음과 몸이 분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일을 하며 동시에 저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한 모노 스타일 라이프를 갖게 됐다.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하는 강건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은 하기도 전에 몸이 거부한다.

그럴 땐 고열을 동반한 몸살에 시달릴 정도로, 몸과 마음의 완벽한 일원론적 합체를 이뤄야만 하는 변종이다. 그래서 마음에 관해서는 초능력에 가까운 신기를 보인다. 고양이처럼 마음의 결을 쓰다듬느라 보내는 하루가 아깝지 않고, 도무지 아무데도 관심 없는 개처럼 멍하니 하루를 보내는 데 천재적이다. 밥은 그렇다 치고 잠조차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몇 밤을 그냥 잊기도 한다.

김소연(45) 시인에 관한 짧은 약력에는 생래적 고독과 슬픔이 물씬 배어 있다. 그에 따르면 슬픔이란 우리가 평생 몸 깊숙한 곳에 매설하고 살아야 하는 근원적 감성이다.

“암늑대가 숲 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 밑줄을 긋고 있었대.// (중략)// 바람을 간호하던 암늑대의 긴 혓바닥이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질 때, 비로소 아이는 늑대의 섭생을 이해하는 한 그루 어른이 되는 거래.”(‘눈물이라는 뼈’ 부분)

자신의 섭생을 위해 타인을 살생해야 하는 운명에 내몰린 이들은 ‘늑대의 눈물’을 흘린다는 시인의 늑대 이야기. 일견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우화로 읽힌다. ‘늑대 이야기에 밑줄을 그으며 악몽을 꾸던 아이가 늑대의 섭생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아이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라고 할 때 아이는 곧 시인과 동일인이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눈물을 뼈에 새겨, 결국 눈물과 뼈라는 이질적인 것을 하나의 몸으로 묶어내는 시인의 감각이다.

“구석기 시대 활을 처음 발명한 자는/ 한밤중 고양이가 등을 곧추세우는 걸/ 유심히 보아두었을지 모른다// 저 미지를 향해/ 척추에 꽂아둔 공포를 힘껏 쏘아 올리는/ 직선의 힘을// (중략)// 19세기 베를린에 살던/ 부슈만 씨도/ 한참이나 관찰했으리라// 기지개를 쫘악 펴고 일어난 길고양이는/ 일평생 척추에 심어둔 상처로 성대가 트인다는 것을.”(‘고독에 대한 해석’ 부분)

김소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터키 여행 중인데 여기는 한밤중이에요. 이메일 넣어주세요.” 그가 답신을 보내왔다.

“지금 터키와 그리스에서 두 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이고, 방학마다 항상 어딘가로 여행을 다닙니다. 서울에 최적화돼 온전한 동기화가 되는 영혼을 언플러그드하기 위해 이러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남미와 북유럽, 아프리카 빼고 모든 나라를 샅샅이 다닌 것 같아요. 터키에서는 기원전의 인간들과 2012년의 인간들이 함께 다가옵니다. 도시생태계에 중독된 인간들과 땅과 산과 바다의 섭리를 따르는 자들이 뒤섞여서 살고 있네요. 아무도 그립지 않은 시간, 비애감이 전혀 없는 고독을 마음껏 즐기기에 터키는 참 좋은 곳이네요. 사람들이 너무나도 친절하거든요. 지금은 에게해가 몇 걸음 앞에서 파도소리를 내뿜는 ‘아이발릭’이라는 작은 도시의 해변에 있습니다. 9월 초에 돌아가요.”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