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사투리 통해 사회 편가르기 꼬집어보다
입력 2012-08-23 18:10
사투리 귀신/남상순/창비
이 작가, 사람을 배꼽 잡게 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그러면서 의표를 찌르는 의뭉스러움은 훈계조를 싫어하는 ‘1318세대’에게는 안성맞춤의 작가적 소질이다.
소설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자.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온 주인공의 등교 첫날 풍경이다.
“제 이름은 정연정입니다. 경상북도 가은이라는 데서 왔고요….”
“증연증이래.” “증연증? 우하하하.” “사투리 귀신이 돌아왔다.”
작가가 들고 나온 소재는 요즘 TV 개그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사투리다. 사회적 약자의 언어가 된 사투리를 통해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왕따’ 문화를 다룬다. 주 얼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왕따가 된, 주인공을 포함한 세 여학생의 우정 이야기. 이것뿐이었다면 뻔할 수 있는 플롯이다. 하지만 귀신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풍부해지고 재미가 배가된다. 슬쩍 스릴러물의 외피까지도 걸친다.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상경한 고등학교 1학년 정연정은 큰아버지댁에 잠시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가족이 모두 이사 오기로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서다. 그런데 큰집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폐가가 있다. 귀신이 나온다는 도심 폐가의 사연은 이렇다. 재벌회사 간부가 사는 이 집 장남은 표준어를 멋지게 구사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아나운서 출신을 아내로 맞는다. 한데, 그녀에겐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지는 하루라도 사투리를 안 쓰만 등에 두디리기가 나여.”(84쪽)
‘국민 표준어’로 불렸던 그녀 역시 두드러기를 ‘두디리기’로 발음하는 원단 사투리 구사자 아닌가. 자신의 고민을 옆집 할머니에게 토로하던 그녀는 급기야 할머니 제안대로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말 대신에 글이 적힌 메모로만 세상과 소통하기로 하다가 오해 끝에 자살하고 만다. 이후 ‘개루와, 개루와’(개루와는 ‘가려워’의 경상도 말)라고 중얼거리는 귀신이 출몰하면서 동네 사람들은 공포에 빠진다. 사실, 그들도 ‘찔리는 게’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한마디 표현에 많은 걸 담아낼 줄 안다. 아나운서 출신 아내는 왜 사투리를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한테 구리이는 구렁이하고 달라요.”(132쪽)
어릴 때 엄마와 논둑길을 가다가 마주치게 된 커다란 ‘배암’에게서 느꼈던 그 찰나적인 공포. 어떻게 뱀이라는 표준어가 그 기억을 말해줄 수 있단 말인가. 사투리는 그 사람의 생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걸 남의 시선 때문에 싹둑 잘라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소설 속에는 사투리가 표준어에 밀려 제자리를 잃은 것처럼, 다수가 속한 집단에 끼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반에서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질려 왕따를 자처한 영교와 푼수기 있는 성격 탓에 아무리 끼려고 해도 배척당하는 진영이 그들이다. 친구에게서 배신당한 상처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연정의 아빠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사투리를 쓴다는 게 흠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문제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다.”(84쪽)
작가는 이처럼 사회적 코너로 몰리고 있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당찬 시골 출신 여고생을 통해 이 사회에 희망을 던진다. 연정과 영교, 진영 세 여고생 친구가 동네 사람들을 설득해 귀신이 나온다는 폐가를 고쳐 복지센터로 만드는 과정이 그런 장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