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왜 역사적으로 망한 나라는 그럴 수밖에 없었나

입력 2012-08-23 18:10


정치질서의 기원/프랜시스 후쿠야마/웅진지식하우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사진) 교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하기 시작한 1989년, 역저 ‘역사의 종말’을 통해 “이데올로기 전쟁은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더 이상 역사 발전은 없다”고 선언, 지식인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가 20여년 만에 새로운 지적 대장정을 마치고 귀환했다.

이번에 던진 질문은 왜 역사적으로 망한 나라는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왜 가난한 나라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가이다. 후쿠야마는 그 답을 정치제도에서 찾고, 횡으로는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종으로는 인류 이전 시대에서 현재까지의 정치제도 진화과정을 분석한다. 총 2권으로 예정된 저작 중 1권인 이번 책은 인류가 부족국가를 형성하던 단계에서 시작해 절대왕정을 거쳐 프랑스 혁명과 연이은 산업혁명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기존 정치체제 연구가 앵글로색슨 중심에 치우치는 우를 범했다고 비판하는 그는 이 책에서 중국 인도 오스만제국 등 동양의 역사 연구에 상당한 에너지를 할애한다.

후쿠야마는 ‘국가, 법치주의, 책임정부’를 근대 정치제도의 3요소로 꼽는다. 이 책 ‘정치질서의 기원’은 오늘날에는 당연시되는 이들 3요소의 출현과 발전 과정을 탐색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것들이 형성된 환경들은 무엇일까? 어떤 질서 속에서 이런 제도들이 창설되었고, 어떻게 서로 관련을 맺었을까. 이런 기초적인 정치제도들이 나타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아프가니스탄이나 소말리아가 오늘날의 (정치 선진국) 덴마크가 되기 어려운 까닭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39쪽)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성공과 처세를 위한 텍스트로만 바라보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후쿠야마의 시선은 새롭다. 진나라가 중국 첫 통일국가를 이룩한 비결을 그는 가족주의에 칼을 빼든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진나라의 국가 건설자들은 앞선 시대의 친족 네트워크가 권력 집중에 방해가 됨을 꿰뚫어보았고, 따라서 의도적으로 그 네트워크를 대체하고 개인을 국가에 직속시킬 정책을 추진했다. 그 교리가 법가라고 불렸다.”(147쪽) 진나라 효공의 최고 자문역 상앙이 혈통에 따라 구성되던 관료제를 실적에 따라 임명하고 승진시키는 20등급의 관료제로 바꿔버린 정책 등을 말한다.

이런 정치제도의 기원에 대한 탐구는 어떤 현재적 의미를 갖는 걸까. 유럽은 계속되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고, 인도는 부패에 찌들어 있으며, 개도국 국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후쿠야마는 이런 정치적 불안에 종지부를 찍을 더욱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며 국가의 부활을 주장한다.

독자들은 “우리는 왜 북유럽 같은, 영·미 같은 선진적인 정치를 갖기 힘든 것일까”라는 질문을 갖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읽다보면 스스로 그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함규진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