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칼부림-“재취업 안돼 억울…무차별 보복하고 싶었다”
입력 2012-08-23 00:50
경기도 수원과 의정부에서 발생한 ‘묻지 마 흉기난동’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국회 앞 대로변에서 행인들에게 무차별로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는 인간관계가 단절돼가는 각박한 세태와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지 못하는 사회분위기 등으로 인해 자신의 분노를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감정조절장애’가 확산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외톨이의 잇따른 묻지마 칼부림=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흉기 난동을 부린 김모(30)씨는 회사에서 퇴사한 뒤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경찰에서 “다른 회사에 취직하려 했는데 잘 안됐다”며 “혼자 죽으려 했는데 그것도 억울해 보복을 하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혼인 김씨는 현재 신용불량자로 3000만원 빚이 있다고 했다.
김씨는 전 직장의 동료가 12명 있었는데 그중 누구라도 나오면 죽이겠다는 생각을 갖고 퇴근시간에 기다리고 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동료 2명이 나오자 흉기로 찌른 뒤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행인들에게도 무찰별로 흉기를 휘둘러 2명이 변을 당했다. 그의 난동에 퇴근길 국회 앞 도로변은 흉기에 찔려 피 흘린 채 앉아있는 여성, 속옷 상의를 찢어 지혈을 해주는 행인, 김씨를 추격하는 사람 등으로 뒤엉켜 잔혹영화를 연상케 했다.
지난 20일 연애를 반대하는 친언니와 올케, 조카를 흉기로 찌른 최모(41·여)씨 사건도 비슷했다. 최씨는 “전부터 가족이 남자 친구와의 연애를 반대했다. 이번에도 반대하면 죽일 계획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씨는 7살 조카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1일 수원에서 흉기난동을 벌인 강모(39)씨는 전혀 안면이 없는 불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삼았다. 전문가들은 분노를 ‘누구에게든’ 풀어버리려는 복수심리가 함께 작동하는 반사회성이 강한 ‘묻지마 범죄’로 분석했다. 지난 18일 발생한 ‘의정부역 흉기난동’ 역시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던 일용직 노동자 유모(39)씨가 무차별로 분풀이하면서 발생했다.
◇‘감정조절장애’로 극단적인 분노 표출=전문가들은 최근 계속되는 흉기난동에 대해 ‘감정조절장애’로 인한 범죄라고 진단했다. 감정조절장애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충동과 함께 고조된 긴장감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발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범죄자는 대부분 평소 본인이 겪고 있는 갈등이 다른 사람에게서 비롯됐다고 생각하고 좌절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더 이상 잃을 것 없다’는 심정에 이를 때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노조절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거지는 인간관계 갈등이나 상실감 등이 꼽히고 있다. 또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방임이나 학대, 또는 과잉보호를 받은 경우도 자기를 조절하는 능력에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방송, 영화, 비디오, 인터넷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문화가 인간의 충동성과 공격성을 부추기는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폭력적인 게임이나 영화에 장기간 노출된 경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책으로도 공격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흉기난동을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보고 고립감을 느끼는 외톨이에게 사회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용상 김미나 기자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