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문흥호] 한·중 수교 20년이 남긴 과제
입력 2012-08-22 18:36
“강해진 중국 직시하고 양국간 정치적 신뢰 회복해야… 反中 정서는 도움 안 돼”
한·중 수교가 20주년을 맞았다. 아픈 과거와 정치·이념적 벽을 넘은 왕성한 교류협력은 그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한·중 관계는 그간의 모습과 확연히 구별되는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는 우리가 수교 이후의 성과를 자축하면서도 한·중 관계의 또 다른 미래를 고민하고 설계해야 하는 이유이며 그 출발점은 현 단계의 한·중 관계를 냉철하게 진단하는 것이다.
우선 한·중 관계의 비대칭성이 확대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의 강대국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상호인식의 편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안팎으로 몸집이 커진 중국의 눈에 비치는 한국은 점점 왜소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부작용이 다방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수교 20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대부분이 한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고 중국이 무덤덤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단적인 예다.
한·중 관계가 한·미, 남·북, 중·미, 중·러 등 한반도 주변 정세와 더욱 긴밀하게 연계되고 있다는 것도 한·중 관계의 새로운 변화다. 한·중 관계는 더 이상 단순한 양자관계가 아니며 한반도 이해 당사국들의 상호관계와 직결된 복합적 관계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한·중 관계가 자칫 양국뿐만 아니라 미국, 북한 등의 요인에 좌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한·중 관계가 태생적으로 주변 국제정세와 연계되어 변화할 수밖에 없지만 그 정도가 심화되고 있다.
한편 비정치·민간차원의 한·중 교류가 획기적으로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반감이 확산되는 ‘이상 현상’ 역시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반한, 반중 정서의 확산을 방치할 경우 한·중 관계에 매우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중국의 강대국화와 결부된 민족주의, 패권주의적 경향이 반한 정서를 야기하고 이것이 다시 한국의 반중 감정을 촉발하는 악순환은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첫째, 떠오르는 중국의 진면목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간 우리는 번번이 중국의 의도를 ‘우리 희망적’으로 해석해 왔으며 때로는 그들의 속내를 알면서도 미·일과의 관계나 정치적 이유로 중국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오류는 한·중 관계의 ‘외화내빈(外華內貧)’에 일조했다. 강한 중국의 출현은 이미 기정사실이며 그들 눈에 우리가 점점 작게 보이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둘째, 한·중 간의 정치적 신뢰 회복을 통해 한반도 평화·안정, 남북한 상생·공영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양국간의 정치적 마찰은 대부분 대북정책에 대한 상호불신에서 비롯되었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되어도 한·중 관계를 잘 풀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무모하거나 무지한 것이다. 한·중 관계와 한·미 관계의 조화로운 양립 역시 우리에겐 절체절명의 과제다. 한·중, 한·미 관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소모적이며 이미 양자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중·미 관계의 이중구조 속에서 우리의 좌표와 원칙을 스스로 설정하고 고수하는 것이다. 해묵은 이념적 잣대만으로 친중·친미를 주장하는 것은 무익하다. 이분법적 구분은 개인, 정권의 과실에 그치지 않고 국가, 민족의 크나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급격한 팽창에 따른 부작용을 앓고 있는 한·중 민간교류의 저변을 점검, 치유해야 한다. 일례로 많은 청년 네티즌들이 민족주의자(cyber-nationalist)로 변신하면서 인터넷공간의 마찰을 격화시키고 상호 이미지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비롯된 한·중 역사논쟁과 문화주권 다툼은 양국관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수교 이후의 한·중 관계는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 주변 정세가 큰 영향을 미쳤지만 우리의 전략적, 정책적 오류도 한몫했다. 결국 국가차원의 대각성과 민족화합만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공영을 실현할 수 있으며 이는 곧 강한 중국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