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노숙인·쪽방 주민들 “도서관서 희망을 설계합니다”
입력 2012-08-22 18:06
노숙인과 쪽방주민 등 취약계층을 위한 사역이 인문학과의 접목을 시도 중이다. 의식주와 의료 서비스 등 1차적 필요의 충족을 넘어 더 근본적인 구제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영등포동 광야교회는 지난해 한 독지가의 후원으로 건물 4층에 17㎡(약 5평) 규모의 북카페를 개설했다. 노숙인 쉼터와 인근 쪽방에 사는 주민 60여명이 매일 도서관을 찾아 800여권의 장서를 자유롭게 꺼내 읽는다.
광야교회 맞은편에 위치한 노숙인·쪽방주민 무료진료소인 요셉의원도 지난달 16일 2000여권의 도서를 기부받아 도서실을 열었다. 책과 거리가 멀었던 쪽방주민과 노숙인 20여명이 냉방시설이 완비된 도서실에서 독서에 열중한다.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 성경을 필사하는 이들도 있다. 비치된 도서 종류도 다양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 ‘1Q84’ 제3권에서 이용규 선교사의 ‘더 내려놓음’, 도스토예프스키의 ‘키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신앙서적은 물론 인문·사회 분야의 베스트셀러와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서적이 구비돼 있다.
영등포지역 쪽방 사역기관들이 도서실을 개설한 이유는 의료서비스와 의식주 등 1차적 지원만으로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김형옥 영등포쪽방상담소장은 “먹고, 자고, 씻는 것만으로는 삶의 의욕을 되찾고 비전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며 “독서를 통해 살아갈 길과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셉의원 도서실 관리를 맡고 있는 자원봉사자 박형숙(63)씨는 “노숙인과 쪽방주민들은 대부분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며 “무료 진료만으로는 몸과 마음의 질병을 다 치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어려운 이웃들이 도서실을 통해 독서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싶다”며 “독서를 통해 작은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게 돕는 전인적 치료가 도서실 운영의 목표”라고 말했다.
반응은 희망적이다. 요셉의원 도서실에서 만난 쪽방주민 이모(47)씨는 “꿈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무료하게 보냈는데 여기서 읽은 신앙서적을 통해 길을 찾고 희망을 갖게 됐다”며 “책값이 워낙 비싸 우리 형편에는 책 한권 사기 어려운데 무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 눈물 나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틀에 한 번 도서실을 찾는다는 또 다른 쪽방주민 김모(47)씨도 “솔직히 대형서점이나 도서관을 찾기는 힘든데 이렇게 오다가다 들를 수 있는 도서관이 생겨 정말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에는 몰랐던, 알아가는 즐거움과 재미 같은 게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협소한 공간과 보유도서의 부족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광야교회 관계자는 “더 넓은 공간에서 북카페를 운영하고 싶지만 공간적·물질적 한계가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요셉의원 관계자는 “욕심 내지 말고 현재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도서실을 내실 있게 운영하는 게 목표지만 더 많고 다양한 책들이 기부돼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02-2636-3373).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