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폭행 범죄자가 우롱하는 전자발찌
입력 2012-08-22 18:39
흉악범 활개 못치도록 법·제도 정비하라
성폭행 전과로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를 착용한 40대가 부녀자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자는 잠시 현관문을 열어놓고 밖으로 나온 주부의 집에 전자발찌를 찬 채 침입했다. 전자발찌를 끊어버리거나, 방전돼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전자발찌 자체를 무시한 것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2008년 9월 제도가 도입된 뒤 전자발찌는 범죄예방에 제법 도움이 되는 듯했다. 제도 시행 전 3년 동안 성폭력 전과자가 저지른 동종사건 재범률은 14.8%였으나 시행 후 3년 동안의 재범률은 1.67%로 감소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나면서 제도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밤새 술을 마시며 음란물을 본 뒤 범행 대상을 찾아 나선 흉악범에게 전자발찌는 제재 장치 역할을 못 한 것이다.
이는 전자발찌 착용자에 대한 관리감독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반경 500m 이내 전자발찌에서 나오는 위치추적 신호를 무력화시키는 전파교란기마저 무방비로 유통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법무부의 전담직원은 위치추적 관제센터 요원과 현장 보호관찰관을 포함해 102명에 불과하다. 2008년 48명보다는 늘어났지만 2008년 127명에 불과했던 전자발찌 착용자가 지난달 말 기준 1029명으로 8배 이상 증가한 것에 비하면 어림없는 숫자다.
전자발찌 경보 건수도 2008년 50만3000여건에서 지난해 140만여건으로 폭증했다. 단순히 계산해도 직원 1명이 매일 40건 가까운 경보발생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번 사건처럼 전자발찌 제도 자체를 비웃으며 범행에 나선 경우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미국에서는 성범죄자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수시로 점검해 음란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해 심리상태를 파악한다. 영국은 경찰, 보호관찰소, 정신보건기관 등이 협력해 재범 가능성이 높은 출소자를 별도로 관리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고, 인력마저 부족한 우리나라는 단순히 전자발찌 착용자의 동향을 파악하고, 경보가 울리면 방전 여부만 점검하는 형식적인 관리에 그치고 있다. 법무부가 재범률 감소라는 실적에 안주해 범죄예방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렸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 수원에서는 특수강간 등 전과 11범이 주점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흉기로 찌르고, 인근 개인주택으로 달아나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도 발생했다. 범인에 대해 청구됐던 전자발찌 부착명령은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이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같이 헌재 결정을 기다리며 전자발찌 착용이 보류된 경우가 2000건이 넘는다.
성폭행은 한 여성의 인생을 파탄내고 가정을 붕괴시키는 흉악 범죄다.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피해자를 찾아가 협박을 하고,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반인륜적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어설픈 생각보다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