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1990년대 고교생활 풍속화

입력 2012-08-22 17:57


하이텔과 삐삐, H.O.T, 게스 티셔츠, DDR의 시대를 기억하는지. 추억의 장난감 ‘다마고치’가 유행하던 그 시절을 아는지. 메이저리거 박찬호 경기에 숨죽이고 드라마 ‘별을 내 가슴에’에 열광하던 1990년대. 우리는 그때 그 시절에서 얼마나 멀리 와버린 것일까.

90년대, 그 중에서도 90년대 중후반에 고등학생이었다면 이 드라마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바로 케이블 채널 tvN이 매주 화요일 밤 11시에 방영하는 ‘응답하라 1997’.

이 시대 30대 시청자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 드라마’인 이 작품은 어른이 된 1980년생 시원(정은지)과 윤재(서인국)가 겪은 90년대 고교 생활을 리얼하게 담아내며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최고 시청률은 케이블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5%에 육박한다.

시청자들이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 매료당한 이유는 ‘디테일의 힘’ 때문이다. 더플코트에 이스트팩을 매던 당시의 10대 패션 코드는 물론이고 H.O.T를 통해 태동하던 팬클럽 문화, 암암리에 유통되는 음란 디스켓과 필수품이었던 미니카세트까지 ‘응답하라 1997’은 9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지난달 12일 첫 방송을 앞두고 서울 청담동 청담씨네시티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신원호 PD는 “이 작품을 통해 ‘안 보던 공감’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항상 궁금한 건 ‘시청자분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할까’ 하는 점이에요. 깊이 공감하게 되는 작품을 하고 싶었죠.”

그가 밝힌 제작 의도는 정확히 적중했다. 온라인 공간은 매주 방송이 끝나면 시청자라는 네티즌들 글이 잇따른다. “공감 연속이다” “깨알 같은 재미가 있다”….

출연자들의 연기력도 화제다. 서인국이나 정은지 등 주축 배우 대다수는 가수 출신이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연기로 매주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부산이 배경인 이 드라마에서 이들은 맛깔 나고 실감나는 사투리로 극의 재미를 더한다.

전문가들은 ‘응답하라 1997’의 인기를 올 상반기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시작된 90년대 복고 바람이 일으킨 현상 중 하나로 해석한다. 90년대에 10대였던 이들이 문화 생산자, 혹은 소비계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요즘 브라운관 및 공연 시장 등엔 당시의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상품이 잇따르는 추세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교석씨는 “90년대는 문화 상품이 산업이기 이전에 예술로 대접받던 마지막 시기”라고 정의했다. “최근 몇 년 동안 70, 80년대 문화가 유행했잖아요. 이처럼 모든 문화는 한 번씩 ‘리바이벌’ 되는 게 일반적이죠. 올해는 90년대가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한 해로 기록될 겁니다. 당분간 90년대 복고 바람을 탄 콘텐츠가 계속 나올 것 같아요.”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