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건희, 형사 무죄지만 민사상 배상책임은 있다"

입력 2012-08-22 16:54

[쿠키 사회]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에 따른 기업지배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형사상 무죄를 선고받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민사상 배상책임은 면할 수 없게 됐다.

형사 재판부는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를 인수하지 않았다고 본 반면, 민사 재판부는 이 회장 또는 비서실 지시로 제일모직 등의 주주가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구고법 제3민사부(홍승면 부장판사)는 22일 제일모직 소액주주 3명이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제일모직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낸 항소심에서 “피고는 제일모직에 13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CB는 피고 이건희의 장남 등에게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 등의 주도로 이뤄졌고,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제일모직에 CB 인수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돼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전환사채 발행 전 에버랜드 주식가치액이 1주당 22만3659원이었음에도 전환사채의 발행가액이 7700원으로 실질가치가 크게 낮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일모직 등 법인주주들이 CB 인수를 포기한 상태에서 이 회장 자녀들이 이를 인수,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으로 봤다.

대구고법 이상오 기획법관은 “(무죄선고는) 주주배정방식에 의한 전환사채 발행의 경우 에버랜드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민사상 배상책임은 각 주주법인이 실권을 할 때 그 임원들에 대해 주주법인에 대한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 민사 판결은 종전에 확정된 판결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모순되거나 판단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회장은 에버랜드 CB를 적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발행, 이재용씨 등 자녀가 최대지분을 확보하도록 해 회사에 970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됐다가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