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전자발찌 ‘무용지물’… 주거제한 등 명령 없어 ‘알람’ 먹통
입력 2012-08-22 00:16
성폭행을 하려다 반항하는 30대 주부를 살해한 서모(42)씨가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범죄 징후는 사전에 포착하지 못했다. 또 서씨는 ‘성범죄자 알림e사이트’에 등재되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전자발찌와 신상공개 명령의 실효성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는 20일 오전 9시쯤 자신의 집 근처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며 돌아다녔다. 그는 피해자 이모씨가 아이들을 유치원 차에 태우려는 걸 보고 이씨 집에서 4분가량 숨어 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GPS 송신기를 휴대하고 있던 서씨의 위치는 관제센터에서 실시간 확인이 가능했다. 착용 대상자를 24시간 감시하는 전자발찌 시스템은 이를 부착한 성범죄 전과자가 어느 건물로 들어갔는지까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자발찌는 서씨의 범죄를 막는 데 무용지물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서씨의 경우 주거제한이나 외출금지 명령이 부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행 전자발찌 부착 명령은 성폭력범, 살인범, 미성년자 유괴범에 대해 내려진다. 법원은 부착명령 선고 시 야간 외출제한이나 아동 관련 시설 출입금지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범죄자가 이를 어기면 알람이 울려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서씨의 경우 특별한 제한명령이 없었고, 범죄가 발생할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다.
서씨의 집 주변에서도 서씨의 범죄경력을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지역별로 얼굴과 범죄 경력을 확인할 수 있는 ‘성범죄자 알림e사이트’에서 검색되지 않아 서씨가 성범죄자라는 것을 아는 이웃들은 없었다. 항상 긴 바지만 입고 다녔던 서씨의 발목에서 전자발찌를 본 사람도 없었다. 서씨가 일했던 전기배선 회사에서도 서씨의 전자발찌 착용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성인 성범죄자의 경우 취업제한 등의 규제가 없어 이를 숨기고 취업한 것이 문제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신상공개 명령은 현행법상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경우 2010년 1월 1일 이후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 성인 대상 성범죄는 2011년 4월 16일 이후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만 사이트에 등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성범죄자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달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와 전자발찌 부착 대상을 법 시행 전 성범죄 전과자까지 소급 적용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지만 언제 법안이 통과돼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성폭력사범 604명(58.7%), 살인사범 424명(41.2%), 미성년자 유괴사범 1명 등 1029명이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의 전자발찌 전담 직원은 65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경찰대 행정학과 이웅혁 교수는 “보호관찰관과 전자발찌 GPS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보호관찰 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성범죄자 생활 전반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심리 상담을 병행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