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아시아, 큰 그림 그려야

입력 2012-08-21 18:35


유럽이 그려온 큰 그림, 유럽연합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위기로 유럽연합이 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피를 흘리는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지역이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실질적 범위나 참전 상황으로 보면 유럽의 전쟁인데 전사자만 900만명 정도다.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30년전쟁에서는 유럽 인구의 절반이 줄었다.

길고 긴 갈등과 살육의 뼈저린 경험에서 잉태되고 탄생한 것이 유럽의 큰 그림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로 유럽의 연합이 풀린다고 해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들이 모여 삶과 정치와 국제적 힘의 구조 속에서 구체화되었으니 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

유럽연합 탄생배경 주목해야

“무슨 까닭으로 세상일은 이렇게 공평하지 못한가. 슬프다. 이웃 나라를 강탈하고 인명을 잔인하게 해치는 자는 이처럼 기뻐 날뛰면서 아무런 꺼림도 없는데, 죄 없고 어질고 착한 인종은 거꾸로 이런 곤경에 빠져야 하는가? … 러시아 일반 관리들이 호위하고 돌아오는 맨 앞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한 작은 노인이 이렇게 염치도 없이 감히 천지 사이를 돌아다니는가 … 곧 단총을 뽑아 그 오른쪽을 향해서 4발을 쏘았다.”(이덕일, ‘근대를 말하다’)

안중근의 옥중 자서전 ‘안응칠역사’를 인용했다. 1909년 10월 26일에 일어난 일이니까 103년 전이다. 의병 참모중장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까닭, 다른 말로 이토의 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한의 독립을 무너뜨린 것, 다른 하나는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것이다. 동양 평화 얘기는 이토 암살을 합리화시키려는 부가적 논리가 아니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깊었다. 여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썼다. 이를 완성하려고 한 달 정도 사형 집행을 늦춰 달라고 요청했고 고등법원장 히라이시는 몇 달이 걸리더라도 특별히 허가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중근은 공소권 청구를 포기하고 집필에 전념했지만 일제가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미완성이지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집필된 것만으로도 영감을 준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대등한 독립국으로서 서로 협력하면서 동양의 평화를 세워가고, 이 토대가 갖춰지면서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당시의 요충지 여순을 세 나라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중립지역으로 만들고 거기에 각국의 젊은이들을 파견하며, 그들이 2개 국어 이상을 배우며 형제와 우방 의식이 깊어지게 하자고 했다. 이런 동양의 평화가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독도를 중심으로 한·일 관계가 험악하다. 센카쿠 또는 댜오위다오를 놓고 중국과 일본의 긴장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요즘은 좀 잠잠하지만 중국의 동북아공정과 연관하여 영토뿐 아니라 역사,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신경전이 깊다. 한·중·일 3국의 이런 갈등 속에 또 북한이 있다. 북한은 세 나라 누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심 변수로 상황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대권주자들, 평화비전 있나

누군가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먼저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시아 전체를 품는 큰 그림 말이다. 유럽과 아시아가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아시아도 이미 충분히 가시밭길과 피밭의 역사를 걸었다. 아직까지 분노의 잔이 차지 않은 것인가. 악마적 인간성의 폭력을 더 겪어야 깨닫겠는가.

누군가, 아시아의 큰 그림을 그릴 사람은? 적어도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이 평화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실 때 선포된 하늘의 메시지의 핵심이 평화 아닌가.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