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0주년] 정치·외교 분야 간극 못좁히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입력 2012-08-21 18:31


오는 24일이면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수교한 지 꼭 20년이 된다. 그동안 양국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증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수교 첫해인 1992년 13만명에 불과했던 양국 사이의 방문객은 지난해 670만명에 달해 52배나 증가했다. 지난해 출국한 우리 국민 3명 가운데 한 명꼴로 중국을 방문한 셈이다. 양국 사이의 교역액(KOTRA 자료)은 92년 64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 2206억 달러로 35배 늘었다. 이제 양국간 인적 교류와 교역에 있어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때다.

지난달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 고문 사건이 불거지자 정부는 이규형 주중대사에게 중국 고위층을 접촉해 답변을 받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중국 측은 이 대사의 면담 요청에 열흘 가까이 답변을 주지 않다가 장관급인 이 대사보다 3단계 낮은 차관보급이 응하는 무성의를 보였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0년,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만나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하지만 위 사례에서 보듯 정치·외교 분야에서 양국의 현실은 아직 성년이 아닌 미성년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 정부 들어 ‘한·미 대(對) 북·중’의 신 냉전 기류가 조성되면서 한반도 관련 사안마다 중국의 북한 편들기는 더욱 심화됐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핵실험 등 북한 도발에 대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감싸는 데 앞장섰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부 9명이 일제히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하면서도 관련 정세 변화 ‘논의’를 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통화 요청을 거부했다.

한국은 지나치게 북한을 감싸는 중국에 불만이 크지만 중국 입장에선 남북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다 지나치게 미국 편향적인 현 한국 정부에 불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탈북자 문제,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 조업을 둘러싼 마찰, 동북공정에 따른 역사 왜곡 등 갈등 요인도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흥호 한양대 교수는 “수교 20년간 이뤄낸 외형적 성과에 비해 정치·안보 분야의 양국 관계는 발전이 더디다”면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지만 사실상 전략적 협력이 없는 관계”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양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일본과의 영토 분쟁을 계기로 말뿐이던 전략적 협력을 실천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일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1일 “일본과의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중국과 먼저 관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 역시 김영환씨 사건이 부담스러운 만큼 수교 20주년을 통해 풀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주한 중국대사관 주최 수교 20주년 기념 리셉션에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참석키로 했다. 당초 김씨 사건이 불거지면서 10주년 때는 장관이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차관급으로 격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었다. 중국 대사를 지낸 류우익 통일부 장관도 참석한다. 중국 역시 31일 주중 한국대사관이 주최하는 수교 기념행사에 최고위층이 참석키로 하는 등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경제대국이자 외교무대에서 입김이 센 일본과 영토분쟁을 하는 과정에서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한·중 양국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겠느냐”며 “그것이 양국이 윈·윈 하는 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