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명승’ 다랭이논이 사라지고 있다
입력 2012-08-20 21:18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5호인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 다랭이논이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20일 남해군 가천마을에 따르면 이 마을 다랭이논 22만7554㎡ 가운데 실제 벼농사를 짓는 면적은 전체의 7.4%인 1만7000㎡에 불과하다. 벼농사를 짓는 농가도 4가구뿐이다. 한때 100마리가 넘던 일소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춰 마을에 남은 일소도 2마리가 전부다.
주민들은 나머지 논 일부에 콩·마늘·시금치 등 대체 작목을 심고 있지만 대다수가 휴경지다. 마을주민 김옥분(87) 할머니는 “한 때 이 마을에 120가구 700여명의 주민이 산기슭을 한 층 한 층 계단식으로 깎아 다랭이논을 경작했다”면서 “계단식 논에 댄 물이 햇빛을 반사하면서 연출하는 경치와 자란 벼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절경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재 이 마을 주민은 90여가구 200여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원주민은 60여가구 130여명에 그치고 있다. 이 곳에 정착한 외지인들은 대부분 펜션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다랭이마을 김윤옥 사무국장은 “이 마을주민 80%가 65세 이상이다 보니 좁은 다랭이논에서 농기계를 이용하기 어려워 벼농사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 오정우(43)씨는 “마을관광 홈페이지에 소개된 사진과 같은 모습을 기대하고 왔는데 실제 농사를 짓는 다랭이논을 찾기 어렵다”며 실망스러워 했다.
옛 명성을 잃어버린 다랭이논을 두고 주민들 사이에는 ‘애물단지’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가천마을 권정도 이장은 “명승 지정에 따른 규제로 주민 대다수가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세금만 꼬박 꼬박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주민은 “사유지인 명승 다랭이논을 국가가 사들여 보존할 길을 찾으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문화재청 도중필 천연기념물과장은 “그나마 이곳이 명승으로 지정이 돼 연중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있는 게 다행”이라며 “논두렁 보존 등 다랭이논을 유지하는 것만 지원이 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남해군 한 관계자는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해 다랭이논 90% 이상이 밭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면서 “문화재청과 협의해 문화재청에서 논을 매입해 관리하는 방향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남해=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