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오가츠중학교 학생들 “대지진 복구 도운 한국에 감사”… 폐타이어로 만든 북으로 ‘희망의 연주’
입력 2012-08-20 19:25
20일 오후 서울 방화동 삼정중학교 대강당. 검은색 의상을 맞춰 입은 일본 오가츠(雄勝)중학교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북을 치자 지켜보던 학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쓰레기더미에서 건진 폐타이어로 만든 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난해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오가츠중 학생과 교직원, 지역인사 등 80여명은 자신들을 도와준 한국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지난 19일 입국했다.
이들의 한국행은 순탄치 않았다. 학부모들은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돼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가노 유호(15)양은 “꼭 한국에서 북을 치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면서 “막상 와보니 사람들도 친절하고 분위기도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비슷한 아픔을 지닌 한국 친구들과 북을 통해 교류하기 위해 삼정중 ‘모듬북’ 학생들을 찾았다. 모듬북은 청소년기의 방황, 불우한 가정환경 등 다양한 상처를 지닌 학생들이 모여 만든 타악 동아리다.
모듬북의 자진모리, 휘모리 공연에 이은 오가츠중 학생들의 ‘부디 씩씩하게 살아라’ 타악 공연이 끝나고 학생들은 서로에게 북 치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마키노 히사(15)양은 “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북을 치면 아픔이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오가츠중은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市) 바닷가 마을에 위치한 학생 40명, 교직원 10명 규모의 작은 학교다. 이시노마키시는 지진 당시 인구의 10분의 1인 58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오가츠중 학생들도 가족과 친지들이 성난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모습을 꼼짝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 미야기현의 아키우 온천으로 떠난 단체여행에서 우연히 여관 주인에게 폐타이어로 북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학생들은 쓰나미가 휩쓸고 간 바닷가에서 폐타이어를 건져냈다. 여기에 비닐테이프를 칭칭 감아 북을 만들고, 나무토막을 주워 북채도 만들었다. 교장은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을 초청해 학생들이 제대로 북 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지진이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이들은 아직도 임시 피난소에 살고 있다. 하지만 희망이 생긴 학생들의 표정은 훨씬 밝아졌다. 이들을 소재로 한 TV프로그램이 일본 전역에 방송되면서 오가츠중 학생들은 일본에서 ‘재난 극복의 상징’이 됐다.
학생들은 오는 23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문다. 앞서 이들은 20일 오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감사의 편지를 낭독했다. 21일에는 인사동, 22일엔 시립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에서 북 공연을 펼친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