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찬규] 독도문제 재판에 회부되면
입력 2012-08-20 18:46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후 일본이 내놓은 법적 대응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는 것이었다. 현 국제법상 일방적 제소로 소송이 가능한, 유엔 해양법협약(이하 협약)에 따른 재판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유독 ICJ만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측이 일본의 추가적 도발만 없으면 계획했던 각종 공사, 예컨대 독도 자체에 대한 시설, 방파제 및 종합해양과학기지 등 인근 해역에 대한 시설 공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ICJ는 ‘부탁되는 모든 분쟁’을 재판할 수 있지만 협약상 인정된 재판 절차는 ‘협약의 해석 또는 적용에서 일어나는 분쟁’만을 재판할 수 있을 뿐이다. 독도와 그 주변 해역에 대한 대규모적 시설공사는 해양환경의 보호 및 보전과 관계될 수 있기에 ‘협약의 해석 또는 적용에서 일어나는 분쟁’일 수 있지만 시설공사를 하지 않게 되면 그와 같은 여지가 없어져 버린다. 일본이 협약상 인정된 재판 절차를 언급하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우리로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법적 폭풍을 피해 간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방참다랑어 사건이란 국제 재판이 있었다. 일본이 국제적 약속을 무시하고 ‘조사어획(experimental fishing)’이란 명분으로 남방참다랑어를 잡다가 호주 및 뉴질랜드에 피소된 사건이다. 원고국들이 협약 제7부속서에 따라 중재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협약 제290조5에 의거,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잠정조치(국내법상 가처분에 해당하는 것)를 요청했다. 뒤이어 나온 잠정조치 명령에선 본안판결이 있을 때까지 조사어획을 중단하라는 등 원고 측 주장이 그대로 수용됐다. 그 후 구성된 중재재판소에서는 일본이 제기한 선결적 항변(先決的 抗辯)이 인정돼 관할권이 없다는 판결이 나옴으로써 사건은 본안심리에 들어가지 않은 채 각하됐다. 그리고 잠정조치 명령은 취소되었다. 하지만 중재재판소는 잠정조치 명령을 취소하면서도 그 취지를 존중하라고 했다.
우리가 독도 및 그 주변 해역에서의 시설공사를 중단하지 않았다가 피소되고 잠정조치 단계에서 패배한 후 관할권 단계에서 승소해 잠정조치 명령의 취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취지를 존중하라는 판결을 받았다면 우리의 처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독도와 관련해 지금까지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재판은 국내적인 것이든 국제적인 것이든 실체적 진실 이외에 법정기술이 크게 작용해 승패에 대한 예단이 불가능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ICJ의 경우 일방적 제소만으로는 관할권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응소하지 않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다간 엄청난 폭풍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ICJ 규칙 제38조5는 일방적 제소가 있을 때 재판소가 이를 상대방에게 통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상대방이 응소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로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보도자료(press release)를 통해 자초지종을 널리 알리는 것이 ICJ의 관례로 돼 있어 자세한 시시비비가 세상에 알려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에 의해 ICJ 관할권이 성립된 사례가 지금까지 두 번 있었다. 2002년 12월 9일 콩고민주공화국이 프랑스를 상대로 이 방법을 사용해 프랑스가 응소함으로써 ICJ 관할권이 성립된 게 첫 번째 사례이고, 2006년 1월 10일 지부티가 역시 이 방법을 사용해 프랑스를 응소토록 만든 것이 두 번째 사례다. 시시비비가 만천하에 알려졌는데도 관할권의 허점 뒤에 은신하면 된다는 발상은 머리만 숨기고 숨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세 번에 걸친 국제재판의 경험을 쌓은 나라다. 그 나라를 얕보아도 안 되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감정, 특히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는 게 우리가 가야 할 정도라고 본다.
김찬규 국제해양법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