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신문과 방송’ 지령 500호
입력 2012-08-20 18:44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월간 ‘신문과 방송’이 8월호로 지령 500호를 맞았다. 이 잡지는 1964년 4월 ‘신문평론’이라는 제호로 창간되었다가 1976년 11월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일반 잡지도 아닌 언론 전문지가 이 정도의 나이테를 쌓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현재 지령 500호 이상을 달리는 월간지는 대부분은 종교 관련 잡지다.
언론잡지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었다. 1928년에 창간된 ‘신문춘추’를 비롯해 1930년대의 ‘철필’ ‘호외’ ‘쩌-날리즘’ 등이 있으나 ‘철필’이 4호까지 발행했을 뿐 나머지는 창간호가 종간호였다. 광복 후 몇몇 잡지가 명멸하다가 1959년 들어 관훈클럽이 펴낸 ‘신문연구’가 지금의 ‘관훈저널’로 이어지고 있다. 창간은 ‘관훈저널’이 앞서지만 계간이기에 지령은 ‘신문과 방송’이 앞선다.
‘신문과 방송’이 언론의 사관(史官) 역할을 해오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당시 신문연구소가 그해 4월 7일 신문의 날에 맞춰 ‘신문평론’이라는 제호로 창간한 이 잡지는 홍종인 소장을 비롯해 김규환 조세형 박권상 천관우 송건호 최석채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산파역으로 참여했다. 내용은 언론현실 또는 제작 실무 관련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그러다가 군사정부가 언론규제를 목적으로 한 신문윤리위원회법 제정을 준비하자 언론자유와 신문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정부와 정면 대결했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죽느냐, 사느냐?’ ‘신문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의 재음미’ 등 반대 글을 연달아 실어 입법저지에 앞장섰다. 이후 계간과 격월간을 거쳐 1975년 6월(제55호)부터 월간으로 환원했다.
언론학자 정진석의 분석에 따르면 남시욱과 정달영의 연재물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 글의 수준, 주제, 시의성, 독자의 호응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남시욱의 ‘체험적 기자론’은 기자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취재보도론, 신문론, 기자론 등 60회 연재했으며 정달영의 ‘기자론, 기사론’도 39회 연재되는 동안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이 잡지는 그동안 안으로는 지리정보시스템(GIS)과 사회연결망분석(SNA) 기법을 소개하는 등 역량강화에 앞장서고 밖으로는 언론계 소식을 전하는 소통기능에 충실했다. 다만 이제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이름이 격변하는 언론환경을 담기에는 너무 협소해 보인다.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와 사회, 사람을 아우르는 새 제호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