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자신에 대한 존중
입력 2012-08-20 18:43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업신여긴 뒤에 남이 업신여기며
家必自毁 而後人毁之 한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자기 집안을 훼손한 뒤에 남이 훼손하며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한 국가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 나라를 망친 뒤에 남이 침략하는 것이다
‘맹자(孟子) 이루상(離婁上)’
상례를 신중히 거행하고 먼 조상을 추념하면 백성이 후덕해질 것(愼終追遠, 民德歸厚矣)이란 말이 있다. 자기 조상의 무덤을 돌보는 일은 동서양이 차이가 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죽은 사람에 대해 추억하는 사람이 산 사람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개인이든 단체든 남의 멸시를 당하는 것은 자초하는 면이 많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경책이다. 남에 대해 뻣뻣한 자세로 응대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지나치게 예의를 벗어나 공경히 대하는 것도 문제이다.
얼마 전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가 한 세리머니를 두고 관련 단체가 대응한 것을 보면서 이 말이 떠올랐다. “공경함을 예에 맞게 한다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恭近於禮, 遠恥辱也)”는 논어의 가르침 역시 절실하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다 환영받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선악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원하는 사람을 공자는 ‘향원(鄕原)’이라 하여 덕의 적(賊)이라고 표현하였다. 사이비가 주는 해독을 크게 경계한 것이다. 상촌 신흠도 ‘야언(野言)’에서 “사람이 살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른 사람이 아니다”고 하였다.
주역 ‘소과(小過)’에는 조금 과하게 하고 크게 과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행실을 공손하게 하는 것, 상례에 슬퍼하는 것, 씀씀이를 검소하게 하는 것을 들고 있다. 조금 과하게 해야 중도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제 계절은 절정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더위도 한풀 꺾인 이때, 마음의 저울추를 다시 잡아 본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