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내몰리는 서민들 ‘슬픈 풍속도’ “내가 낸 국민연금, 대출할 수 없나요”

입력 2012-08-20 21:35

“내 돈 몇 천만원이 쌓여있는데 고작 100만원을 빌릴 수 없느냐.”

얼마 전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실에 50대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근 실직했다는 그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얼마 못 사실 것 같다. 마지막 길에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돈이 없다”며 “내가 낸 국민연금을 빌리고 싶은데 왜 대출이 안 된다고 하느냐”며 울먹였다. 월 소득 300만원을 기준으로 10년간 국민연금을 납부했다면 현재까지 적립금은 3240만원. 민간보험이라면 2000만∼3000만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국민연금은 생활자금 명목의 대출이 불가능하다.

20일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에도 비슷한 사연은 줄을 잇고 있다. 지난봄부터 ‘생활이 정말 어렵다. 아버지가 10년 넘게 국민연금을 가입했는데 대출이 가능한가’라는 질문부터 ‘숙식이라도 해결하게 제발 돈을 빌려 달라’, ‘노후는커녕 당장 굶어죽게 생겼다’, ‘돈 빌릴 데가 없다. 죽고 싶다’는 하소연, ‘국민연금에 내 돈이 있는데 신용불량에 개인파산까지 해야 되나’ 같은 분노까지 절절한 사연들이 넘쳐났다.

또 지난 5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60세 남성은 “어차피 99% 죽을 목숨 제대로 치료나 받아보고 싶다. 치료비가 절실하다”고 호소했고, 국민연금에 2800만원이 적립돼 있다는 한 가입자는 ‘지금 수중에 2만원도 안남았다. 밥 먹을 돈도 없다. 먹고 살게 딱 10%, 280만원만 빌려 달라. 사채는 정말 쓰고 싶지 않다’는 장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연금공단은 대출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심각했던 1998년과 2008년 두 차례 대출을 실시했지만 상환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실직자가 대상이었던 1998년에는 대출자 24만여명 중 90%, 신용불량자를 지원한 2008년에는 대출금 350억원 중 절반 정도가 제때 상환되지 않았다. 공단 관계자는 “갚지 못한 대출금은 연금액에서 깎기 때문에 상환율이 낮다고 해서 공단이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면서 “그래도 대출자의 노후보장에 구멍이 생기는 만큼 대출 확대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남윤인순 의원실 김봉겸 보좌관은 “원칙만 고수하는 건 은행대출이 어려운 저신용 계층을 고리의 사채시장으로 떠미는 것”이라며 “사보험과의 형평을 고려해서라도 국민연금 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5월 시작된 실버론의 경우 회수율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성과가 좋은 만큼 이를 우선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이 국민연금 대출을 받고 갚지 못하면 결국 가장 취약한 계층의 노후부터 위험해질 수 있다”며 “직접 대출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되, 국민연금을 담보로 활용하는 등의 간접적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