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어지럽지? 80%는 ‘귀’가 원인
입력 2012-08-20 18:12
런던올림픽 남자 도마 종목에서 한국 역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양학선 선수의 가장 큰 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평형 및 균형 감각이다. 그는 경기 당시 난도 7.0의 고난도 기술을 구사할 때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균형감각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신체 균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귀 속의 전정기관을 중심으로 말초기관부터 중추신경계까지 복잡하게 얽힌 기관들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어지럼증을 느껴 균형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 양 선수는 반복 훈련을 통해 이 기능을 최고 수준으로 발달시킨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쉽게 균형을 잃고 어지럼증을 느낄 때 의심해야 될 질환들을 살펴본다.
◇어지럼증의 80%는 귀 문제로 생긴다=어지럼증은 노인의 약 50% 이상에서 발생하고, 병원을 찾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이들이 어지럼증을 느끼는 가장 흔한 이유는 귀에 생긴 문제다. 한림대 평촌성심병원 이비인후과 홍성광 교수는 “일반인이 어지러움을 느낄 때 뇌 질환이나 빈혈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론 귀 문제일 가능성이 약 80%에 이를 정도로 높다”고 말했다.
어지럼증에는 발생 부위에 따라 말초성과 중추성 두 종류가 있다. 먼저 말초성은 귀 문제로 일어나는 어지럼증을 가리킨다. 대개 지속시간이 짧지만 며칠 뒤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중추성은 이와 달리 지속시간이 길고, 며칠씩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말초성 어지럼증은 우리 몸에서 평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귀의 전정기관 이상으로 발생한다. 몸을 뒤척일 때나 일어설 때, 고개를 크게 움직일 때 어지럼증이 심해지고, 가만히 안정을 취하고 있으면 증상이 나아진다. 주요 원인질환은 이석증과 전정신경염, 메니에르병 등이다.
◇감기 뒤 나타나는 전정신경염 주의해야=이석증은 연령별로는 노인, 성별로는 여성에게 흔하다. 귀 가장 안쪽에 위치해 우리 몸의 평형기능을 조절하는 세반고리관에 이석(耳石)이 흘러들어갔을 때 생기는데, 주변이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몸을 움직일 때 어지러움이 심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석증은 몸의 자세를 바꿔가면서 이석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이석치환술’로 치료한다.
만약 어지럼증 외에 귀에 물이 찬 느낌이나 청력 저하 등의 증상이 동반됐다면 이석증이 아니라 메니에르병이나 전정신경염 때문일 수 있다. 특히 메니에르병일 경우 현기증과 함께 청력 저하, 이명, 이충만감(귀에 물이 찬 느낌)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보통 빙빙 도는 듯한 현기증이 20분 이상 지속되나 24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약물 요법으로는 이뇨제, 항히스타민제 등이 쓰이고 심한 경우 수술을 하기도 한다.
전정신경염은 감기를 앓고 난 후 많이 나타난다. 감기로 저항력이 떨어졌을 때 침투한 바이러스가 전정기관이 있는 내이(속귀)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는 귓병이다. 중심을 잡기 힘들고 어지러워지는 것도 균형을 잡는 평형기능이 염증으로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증상이다. 초기에 약물 치료를 하면 2∼3일 내 염증 해소와 함께 어지러운 증상도 사라진다.
◇어지럼증 유발, 귓병뿐만이 아니다=어지럼증은 골격계와 근육, 말초신경과 중추신경계인 뇌 등에 이상이 생겼을 때도 느껴질 수 있다. 이른바 중추성 어지럼증이다. 이때는 워낙 다양한 부분이 관여돼 있어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 힘든 경우가 많다.
특히 노인들은 어지럼증을 질병으로 여기지 않고 빈혈, 나이, 체력저하 탓으로 생각해 제때 치료를 받지 않고 증상을 키우는 경우가 많아 가족의 세심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 어지럼증을 느끼는 노인들은 균형감각 이상으로 운동장애나 낙상 사고 위험뿐 아니라 2차적으로 우울증 같은 합병증을 겪기도 쉽다.
세란병원 신경과 어지럼증 클리닉 박지현 박사는 “노년기 낙상사고의 약 7%가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러움 때문이라는 보고가 있다”며 “노년기 어지러움을 단순하게 나이와 체력저하 탓으로만 여겨 방치하지 말고, 정확한 원인을 가려 ‘균형감각 재활치료 프로그램’ 등 적절한 치료를 통해 낙상사고 위험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