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평창에 보내는 런던 메시지

입력 2012-08-20 21:23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때의 일이다. 사이클 경기가 끝난 다음날 메인프레스센터(MPC) 게시판에 이런 공고가 붙어 있었다.

‘벨로드롬 판매함. 금액 20만 달러.’

전날까지만 해도 전 세계 사이클 선수들이 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이던 경기장을 판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올림픽 경기장 벨로드롬이 나무와 철제를 복잡하게 엮어 만든 조립식이었던 게 생각났다. 처음부터 임시로 올림픽 시설을 만들어 사용한 뒤 올림픽 후 철거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 주경기장을 비롯, 올림픽공원 내 각종 경기장을 올림픽 기념물로 애지중지 보존하는 모습을 봐왔던 기자로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애틀랜타올림픽 조직위는 개·폐회식이 열렸던 주경기장을 올림픽 후 철거한 뒤 야구장으로 개조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지금의 미국프로야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홈구장이 바로 그곳이다. 한국 정서와는 너무도 다른 미국식 실용주의의 한 단면이라고 이해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경기장 신축 최대한 억제하고

이 같은 실용주의는 16년이 지난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똑같이 재현됐다. 농구 경기가 열린 바스켓볼 아레나는 건물 전체가 하얀 천막으로 감싸인 임시 구조물이었다. 이 경기장은 다음 올림픽이 열리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곧바로 판매됐다. 수구 경기가 열린 워터 폴로 아레나는 5000석 규모의 임시 경기장으로, 대회 후 해체 수순을 밟는다. 주경기장도 8만석 가운데 5만5000석은 언제든 떼어낼 수 있는 임시 관중석으로 설계했다. 올림픽 뒤에는 관중석 규모를 줄인 뒤 프로축구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홈구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처럼 올림픽 경기장을 두고 보존보다 재활용 등 실용성이 더욱 강조된 것은 흑자 올림픽을 노린 때문이다. 올림픽 관련 경비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경기장 시설 부문이다. 올림픽 개최국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요구하는 일정 규모의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경기장 신축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번 런던올림픽 신축 건물은 주경기장과 실내 경기장 몇 곳에 불과하고 대부분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는 방안으로 적자를 탈피하려고 애썼다. 신축 건물도 주경기장처럼 용도를 바꾸거나 올림픽 후 해체하는 방안을 택했다. 대규모 경기장을 신축하며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했던 2004년 아테네 대회와 2008년 베이징 대회와는 현저히 다른 양상이다.

우리가 런던올림픽에 주목하는 것은 이들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처법이다. 한국은 그동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월드컵 축구 등 수많은 국제대회를 개최하면서 스포츠 쪽에 자원이 과다 배분된 감도 없지 않다. 수만명 수용 규모의 경기장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거대한 흉물로 방치되기 일쑤였다.

최근 그리스의 경제위기 이면에 2004년 올림픽 때의 과다지출이 원인이라는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또 베이징이 올림픽 시설의 사후관리에 엄청난 재원을 쏟아붓고 있다는 소식도 남의 일 같지 않다.

사후 활용 방안 적극 고려하길

한국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이어 2018년에는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예정돼 있다. 앞으로 6년간 대규모 체육행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런던올림픽처럼 경기장 신축은 최대한 억제하되 사후 활용 방안을 면밀히 검토해야 함은 당연하다. 특히 천문학적 경기장 시설비가 계상돼 있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우 투자 적절성 여부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대회를 개최한 뒤에도 전시성, 예산 낭비성 행사는 가급적 자제하고 실속을 챙겨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국제 스포츠 사회의 ‘봉’ 노릇은 그만해야 한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