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대선후보 박근혜] 대통령의 딸, 비극적 세월 넘어 정치 지도자로

입력 2012-08-20 18:20


‘박근혜’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딸로, 양친을 비극적으로 잃고 긴 침묵의 세월을 지나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로 우뚝 선, 드라마틱한 삶 자체가 대한민국 역사다. 1997년 정계입문 이후 강인하고 차가운 정치 지도자 이미지만 부각되다 보니 “인간적인 매력을 못 느끼겠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모를 것 같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정작 박 전 위원장과 시간을 함께 보내온 이들은 ‘인간 박근혜’가 의외로 따뜻하고 소탈하다고 말한다.

◇‘애국 DNA’를 새기다=52년 대구에서 1남2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선친은 9살이던 해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63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장충초, 성심여중·고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지만 74년 8·15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어머니가 문세광에게 저격당했다는 소식에 급거 귀국했다. 공항에서 별세 소식을 접했을 때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만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고 아픔을 회고했다. 79년 10·26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청와대에 있으면서 ‘퍼스트레이디 대리’ 역할을 맡았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는 그 기간에 애국과 애민, 안보라는 가치를 자신의 DNA에 새겼다.

◇자연인 박근혜로 살다=박 전 대통령 서거 후 서울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와 보낸 18년은 ‘침묵의 세월’이었다. 그는 선친을 향해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과 지인들의 배신이라는 쓰디쓴 경험을 했다.

80년 잠시 영남대 이사장직을 맡았으나 학내 반대에 부닥쳐 물러난 뒤 육영재단 운영에 매진했다. 90년 육영재단을 동생 근영씨에게 물려주고 ‘자연인 박근혜’의 삶이 시작됐다. 일기와 독서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틈틈이 시를 썼다. 단전호흡으로 심신을 달련하고 성경에 몰두했다. 동양철학과 관련된 책, 특히 ‘정관정요’ ‘명심보감’은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찾아 읽었다고 한다. EBS교육방송을 보며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도 이때다. 이따금씩 홀로 문화유산 답사 길에 오르곤 했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세우다=97년 12월 외환위기로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정계 입문을 결심, 대선을 8일 남기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 98년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2001년 이 총재가 당 개혁안을 거부하자 반발하며 탈당,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2002년 5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독 회동도 가졌다.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았다. 천막당사로 옮겨 쇄신작업에 앞장섰고 4·15 총선에서 121석을 확보하며 침몰 직전의 당을 구했다. 온갖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선거의 여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유세 중 피습을 당하자 “두 번째 삶, 하늘이 내게 주신 덤이라 생각하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위기 때마다 그를 강한 지도자로 우뚝 서게 만든 것은 ‘원칙과 신뢰’였다. ‘수첩공주’라는 비아냥을 오히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준비된 대통령’ 본선에 오르다=2007년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깨끗하게 승복하고 지원 유세에 나섰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겨울을 지냈다. 잠시 무대에 주연으로 오른 건, 2009년 미디어법 입법과 2010년 세종시 수정 추진이 불거졌을 때였다. 국회 본회의장에 직접 나가 수정안 반대 입장을 밝히며 ‘약속과 신뢰의 정치인’임을 재확인시켰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선 패배로 당이 또 다시 흔들리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구원 등판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4·11 총선에서 과반 152석을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 7월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는 “어떤 국민도 홀로 뒤처져 있지 않게 할 것”이라며 “단 한 명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같이 가겠다”고 했다.

5년 전 경선 패배 후 전문가들로부터 개인 수업을 받으며 정책을 가다듬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현장을 살폈다. ‘준비된 대통령’을 내세운 그의 두 번째 도전이 20일 대장정에 올랐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