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항소심 재판 9개월째 감감 무소식 왜?
입력 2012-08-19 19:51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한명숙(사진) 전 국무총리의 항소심 재판이 9개월째 감감 무소식이다. 재판부는 4·11 총선 등 정치 일정,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한 전 총리의 뇌물사건 등을 이유로 심리를 개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서울중앙지법이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판결”이라며 이례적으로 판결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공개 자료까지 냈다. 당시 법원은 “판결은 판결일 뿐 다른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사건은 같은 해 11월 23일 서울고법 형사6부에 배당됐다. 그런데 이후 재판은 사실상 멈춰 서서 19일 현재까지 공판 준비기일조차 예정돼 있지 않다. 서류상으로도 지난해 12월 검찰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고, 지난 1월 한 전 총리 측이 변호인 선임계를 낸 정도가 전부다. 1심 재판의 경우 검찰이 2010년 7월 기소해 두 달 만인 9월 16일 공판 준비기일이 열렸고 4번의 준비를 거쳐 그해 12월 6일 본격 심리가 시작됐다.
법원행정처가 지난해 발간한 사법연감을 보면 2010년 고등법원의 형사사건 항소심(9789건) 처리 기간은 평균 3.1개월이었다. 한 전 총리처럼 불구속 재판인 경우에도 접수부터 선고까지 평균 109일이 걸렸다.
고법 재판부는 “올 상반기는 지난 4월 총선에서 한 전 총리가 당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에 재판 진행이 어려웠고, 이후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배당되면서 재판부도 여력이 없었다. 연말 대선도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과 변호인 측도 눈치를 보는지 빨리 진행하자는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재판 진행은 전적으로 법원 권한인데 기일을 안 잡아 주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 선고 결과도 보겠다는 입장이다. 한 전 총리는 2009년 12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1, 2심에서 무죄를 받고 지난 1월 대법원 3부에 올라간 상태다. 재판 기일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법원에도 정해진 프로세스와 절차가 있고, 재판 기일을 여유 있게 잡는 등의 방법이 있는데 첫 기일조차 잡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그 이유에 정치적 부담 등이 고려됐다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변호사는 “유죄든, 무죄든 법원이 오해 살 일을 피하겠다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라며 “불구속 재판인 데다 항소심은 시작하면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재판부 재량에 맡기는 것이 낫다”고 했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