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1부) 비상등 켜진 개인의 정신세계] (5) 불면증
입력 2012-08-19 21:42
잠 못 이루는 고통… 한국인 10명 중 1명이 시달린다
밤 시간의 대부분을 뜬눈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11년 한 해 동안 국내 병원에서 불면증 치료를 받은 환자만 38만여명에 이른다. 수면의학 전문가들은 실제 환자 수가 이보다 최소 10배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이들 10명 중 6∼7명은 50대 이상 장·노년층이다. 고령화 사회의 가속화와 더불어 불면증 환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인과 증상은 각기 다르지만, 밤을 뜬눈으로 새는 것이 건강에 해롭기는 어느 경우든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떠안아야 할 비용 부담도 그만큼 커지게 마련. 그래서 불면증 극복을 위한 보건 안전망 구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면증 속에 숨은 문제를 살펴본다.
불면으로 고생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잠 못 이루는 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불면증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도 아니다.
박모(68·여·서울 돈암동)씨는 불면증의 한 유형인 입면장애 환자다. 입면장애란 취침 시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입면장애 환자들은 잠들기는 힘들어도 일단 잠이 들면 그런대로 유지된다.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정기영 교수는 “대개 마음이 불안정하거나 걱정거리가 많거나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씨는 이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는 어렵게 잠이 들고도 수면 중 자주 뒤척여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4∼5년째다. 따라서 늘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 않고 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낮에도 계속 피곤해 토막잠이라도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잠이 안 온다고 한다.
마치 목젖이 늘어진 신체적 이상 때문에 생기는 수면 중 무호흡 증후군에 동반되는 주간 수면부족 증상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로 인해 박씨는 남편과 같이 자지 못하고 각방을 쓴 지가 꽤 됐다. 결국 남편과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박씨는 요즘 ‘황혼이혼’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밤에도 괴롭지만 이렇듯 다음 날 낮 시간에도 졸리고 피곤하며 집중력이 떨어져 몹시 고통스럽다. 다른 유형으로는 잠드는 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중간에 자주 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벽에 너무 일찍 깨서 다시 잠이 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잠이 계속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항상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자식에게 용돈을 받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눈치를 보게 돼서 너무 힘들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10년 전 생업전선에서 은퇴한 권모(70·서울 수유동)씨의 하소연이다. 2년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는 매일 밤 12시쯤 잠자리에 들어 새벽 2시에 깬다. 그리고 다시 잠들지 못한다. 어쩌다 잠이 들어도 밤새 서너 번 깨기 일쑤다. 그렇게 2∼3일간 잠을 거의 자지 못하게 되면 하루쯤은 5∼6시간 자는 날이 생긴다.
권씨는 “처음엔 스틸녹스, 아티반 등의 수면제를 먹고 어느 정도 수면을 취할 수 있었지만 1년 전부터는 약을 먹어도 잠이 안 와 소용없게 됐다”고 호소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는 “특히 우울증 환자 가운데 권씨와 같은 유형의 불면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새벽에 깨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에 그들의 우울증은 최고조에 달한다. 우울증 환자들이 대개 새벽녘에 자살을 기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새벽에 일찍 깬다고 해서 다 치료가 필요한 병적 불면증으로 봐야 하는 건 아니다. 치료와 주위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불면증은 일단 한번 깬 후 다시 잠들지 못해 고통스럽거나 낮에 활동하는 데 지장을 느끼는 경우만이다. 사람마다 잠자는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뜻밖의 고민거리로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불면증에 해당되지 않는다. 홍 교수는 “소위 치료를 필요로 하는 불면증이란 잠들기가, 또는 잠 유지가 잘 안 되는 것이 한 달 이상 계속돼 수면부족이 심각한 상태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불면증 유병률은 7∼12%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정작 병원을 방문, 치료받는 사람은 약 10%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최근 5년간의 불면증 진료비 심사결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1년 한 해 동안 불면증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총 38만3000여명이었다. 이로 인한 진료비 지출은 총 23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07년의 20만7000여명, 107억여원보다 각각 84.6%, 112.9% 증가한 수치다.
여자가 남자보다 약 1.7배 많고, 연령별로는 전체의 26.5%를 차지하는 70세 이상 고령자를 포함해 50대 이상 장·노년층이 65.6%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불면증은 단순한 개인 건강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경제적·사회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