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2부리그 진입 추진 시민구단 ‘부천FC1995’… ‘마지막 기회’ 꿈을 찬다

입력 2012-08-19 18:09


지난 18일 오후 7시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 “삑∼” 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길게 울렸다. 동시에 100여 명의 서포터스가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이 응원하는 선수들은 K리거도, 내셔널리거도 아니었다. 3부인 챌린저스리그 ‘부천FC 1995’ 선수들이었다. 서포터스가 없었더라면 이날 열린 부천FCD와 천안FC의 우중 경기는 얼마나 을씨년스러웠을까?

서포터스는 ‘풀뿌리 구단’ 부천FC의 유일한 자산이다. 부천FC엔 없는 게 너무 많다. 우선 전용 훈련장이 없다. 전용 버스도 없다. 숙소도 없다. 선수들에게 계약금과 월급을 줄 돈도 없다. 구단 살림이 늘 빠듯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출전 수당밖에 못 받는다. 경기당 30만원이다. 그나마 이번 시즌 오른 게 이 정도다. 지난 시즌까지는 10만원을 받았다. 그나마 이겼을 경우에만. 후보 선수들은 아예 없었다.

주장 박문기(29)에게 물었다. “왜 비전도 없는 축구를 하느냐”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할 게 없어서 축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축구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수비수인 박문기는 2006∼2007시즌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었다. 그런데 발가락 피로골절이 불쑥 찾아왔다. 1년을 쉬어야 했다. 팀은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았다. 2008년 싱가포르 1부 리그 ‘슈퍼레즈’에 둥지를 틀었다. 그해 팀의 준우승을 이끌어냈다. 다음해 공익 근무를 위해 입국해 부천FC에 입단했다. 병역을 마치면 K리그나 해외 리그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부천FC에 눌러앉았다.

박문기에게 “왜 돈이 안 되는 선택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놈의 정 때문”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정 때문이라니, 이건 무슨 소리? “팬들이 힘을 모아 우리 팀을 만들었잖아요. 팬들과 정이 들어 떠날 수가 없었어요. 또 다들 생활이 어렵지만 묵묵히 뛰는 동료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고요.”

부천FC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눈물겹다. 콩팥이 4개인 비운의 골키퍼 차기석(26). 그는 청소년 국가 대표팀 주전 골키퍼 출신이다.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눈에 들어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훈련까지 참여했다. 그러나 20세 때 신부전증에 발목이 잡혔다. 2006년에 아버지의 콩팥을, 2008년엔 작은아버지의 콩팥을 이식받았다. 현재 병이 도져 선수로 뛰지 못하고 세종대 축구팀 골키퍼 코치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철없던 시절 툭하면 사고를 치고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린 정현민(29). 그는 K리그 입단 테스트에서 자기보다 공을 못 찬다고 생각했던 선수가 버젓이 선발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껴 축구에 대한 꿈을 접었다. 이후는 방황의 세월. 성인오락실에서 ‘삐끼’까지 했다. 보다 못한 후배가 “형, 부천FC가 선수를 모집한대”하고 입단을 권유했다.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다”고 독한 마음을 먹은 그는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덜컥 합격했다. 그라운드를 누비니 모든 걱정이 사라졌고, 마냥 행복했다. 그는 지난 6월 챌린저스리그 최초로 100경기 출전이라는 소중한 기록을 세웠다. 지금은 박문기와 함께 유소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부천FC에는 눈물겨운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이 ‘축구의 외인부대’ 부천FC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부천FC는 부천시청과 손을 잡고 내년 프로 2부 리그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9월 중순 2부 리그 참가 팀들을 결정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 축구는 프로 K리그와 실업 내셔널리그, 아마추어 챌린저스리그로 구성돼 있다. 2013년 승강제가 시행되면 프로축구 리그는 1부와 2부로 꾸려진다. 그 아래로 내셔널리그와 챌린저스리그가 운영된다. 만일 부천FC가 올해 넋을 놓고 있다면? 내년에 졸지에 4부 리그로 추락한다. 그러면 팬들이 급감하고, 후원도 뚝 떨어진다. 한마디로 끝장이다.

부천FC는 내년 2부 리그로 가기 위해 지난해 12월 두 번째 사령탑으로 옛 부천SK의 간판 공격수였던 곽경근(40) 감독을 선임했다. 부천시 상동에서 태어난 곽 감독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했으며 성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부천SK 레전드’ 곽 감독에게 꿈을 물었다. 그는 빙긋 웃더니 대답했다. “부천을 축구 도시로 만드는 겁니다. 연고지를 옮긴 SK가 후회할 정도로 부천 축구를 화려하게 부활시켜야죠.” 곽 감독은 연봉을 받지 않는다. 수당이 있지만 쥐꼬리만하다. 그에게 부천FC는 돈이나 명예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런 게 열정 아닐까? 몸을 다치고 마음도 다친 선수들과 고향에서 옛 영광을 되살리려는 감독, 그리고 헌신적인 서포터스가 하나가 되어 K리그 승격이라는 꿈을 이뤄 가는 ‘시민구단’ 부천FC. 꿈은 희망을 낳고, 희망은 또 다른 꿈을 만들어 낸다.

부천=글·사진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