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최정욱] 왕따 공화국
입력 2012-08-19 18:36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 떠오른 핫이슈 중 하나는 인기 걸그룹인 티아라 관련 사태일 것이다. 사회적 병리현상인 집단 따돌림(왕따) 문제가 선망의 대상인 아이돌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티아라 화영 왕따 사건 사진 정리’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여기엔 지난달 초 방송된 ‘스타 인생극장-티아라편’을 캡처한 사진들이 담겼다.
사진에는 방송 당시 티아라 멤버들이 팔을 들어올리며 ‘출발’을 외치는 과정에서 한 멤버에게 눈을 찔려 아픔을 느낀 화영이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또 다른 멤버가 떨어뜨린 사탕이라며 화영에게 먹으라고 주는 장면 등도 있었다. 이밖에 화영의 친언니이자 파이브돌스 멤버인 효영에게 눈물을 보이며 “연예계 생활은 엄마에게도 말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 모습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관심을 받던 걸그룹에도 왕따가 있었다니, 네티즌들은 경악했다. 화영은 티아라가 뜨기 시작한 2010년 영입된 래퍼다. 그는 지난 5월 18일 트위터에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32주년째 되는 날이네요. 부당한 권력과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투쟁하신 모든 분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는 등 네티즌들에게는 ‘개념 아이돌’로 통한다.
파문이 확산되자 소속사 측은 즉각 화영에 대한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영의 탈퇴가 마치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오히려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을 떠올리게 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의 ‘티진요(티아라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카페는 개설 며칠 만에 회원 수 3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최근엔 티아라 사태와 관련,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친구들 중 한 명을 지목해 괴롭히는 ‘티아라 놀이’가 유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왕따는 다수가 특정인에게 심리적·물리적 폭력 등 위해를 가하는 범죄행위다. 또 피해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증상을 겪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피해학생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해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후약방문식 목소리들만 나왔을 뿐이다.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왕따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3035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왕따 경험을 조사한 결과 30.4%가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왕따를 당한 기간은 평균 7개월이었고 이를 주도한 사람은 직장 상사, 선배, 동기 순이었다. 특히 왕따의 영향으로는 ‘이직을 고민했다’, ‘자신감을 잃었다’, ‘불면·우울증 등 질병이 생겼다’는 답변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왕따 현상 확산에 대해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꼬리자르기식 대응으로 아랫사람을 쳐내는 정치권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왕따와 밀접한 학교폭력과 관련, 전국 1만1000여개 초·중·고교별 세부 현황을 오는 11월 학교정보 사이트에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왕따 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선 학교 단위에서부터 정치권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정욱 디지털뉴스부 차장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