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호 ‘1심+5년’ 12년刑… 기업인에 엄격한 판결 잇따른다
입력 2012-08-17 23:08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정형식)는 17일 9조780억원의 금융 비리를 저지른 혐의(횡령·배임 등)로 구속 기소된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62)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지난 2월 받은 1심 형량 징역 7년보다 오히려 5년이 늘었다. 2심에서 형량이 낮아지는 게 통상적이지만 재판부는 “예금자들의 돈을 잘못 운용해 회사를 파산에 이르게 했으므로 엄중한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회장 등은 불법대출 6조315억원, 분식회계 3조353원, 위법배당 112억원 등 모두 9조780억원에 이르는 금융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양형기준 효과?=법원이 전날 김승연(60)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한 데 이어 박 회장에게 1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함에 따라 사법부의 경제범죄 불관용 원칙이 굳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양형기준 효과’라는 해석이 많다. 양형기준은 법원이 주요 범죄에 대한 ‘들쑥날쑥’ 판결을 줄이기 위해 2007년 4월 양형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양형위원회가 출범하기 3개월 전 현직 부장판사를 노린 석궁 테러가 발생했다. 전 대학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부장판사의 집을 찾아가 석궁을 쏜 사건이다. 당시 법원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양형위원회는 2년간의 작업 끝에 2009년 7월 첫 번째 양형기준을 제시했다. 이어 지난 2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이어 김승연 회장도 실형이 선고됐다.
경제 민주화 요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300억원대의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올해 1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풀려나자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정치권에서는 대기업 비리 봐주기 관행을 없애야 한다며 재벌회장에 대한 집행유예를 없애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봐주기 없어지나=법원 안팎에서는 최근 판결들이 이후 대기업이나 대형 경제범죄 사건의 ‘참조판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만약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면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을 것”이라며 “앞으로 양형기준에 따라 이런 판결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재벌 총수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은 큰 변화이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형기준 마련은 변호사들의 소송 대응에도 상당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후문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형기준이 생긴 후로 판사들 90% 이상이 그 기준을 참고한다는 느낌”이라며 “300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은 처음부터 무죄를 주장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인 변론”이라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상 3년 이하만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데 300억원 이상은 최하한이 4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태명 전북대 로스쿨 교수는 “지금까지 재벌이나 기업에 대해 특혜를 줬던 법원이 ‘이제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실형 선고를 했다가 보석 허가를 하거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하지는 않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