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어산지 망명 허용에 英·스웨덴 강력 반발… 서구 vs 남미 외교戰으로 비화
입력 2012-08-17 18:54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1)의 망명 여부가 서구와 남미 간의 외교 문제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미국가연합은 어산지에게 에콰도르 정부가 망명을 허용한 것과 관련, 19일(현지시간) 회원국들이 긴급 외교장관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브라질 외교부가 16일 밝혔다. 회의가 열리면 어산지 망명을 받아들인 에콰도르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는 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우루과이의 루이스 알마그로 외교장관은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어산지의 망명 결정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라며 “영국 정부가 에콰도르 정부의 결정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남미국가연합 외교장관들은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머무는 어산지를 에콰도르까지 무사히 이송할 방안과 함께 영국 경찰 등의 무력시위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논의할 계획이다. 남미국가연합은 남대서양 포클랜드 섬(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섬) 영유권을 둘러싼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공방에서 아르헨티나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그러나 영국과 스웨덴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영국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은 “어산지가 영국을 무사히 빠져 나가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게 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에콰도르까지 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대사관 밖에는 영국 경찰 30명과 경찰차 9대가 배치돼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어산지를 성폭행 혐의로 송환 요청한 스웨덴 외교부는 주스웨덴 에콰도르 대사를 불러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스웨덴 외교부는 “에콰도르의 망명 허용 결정은 우리의 사법 절차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며 영국과 스웨덴의 사법 협력에도 도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어산지는 2010년 스웨덴에서 위키리크스를 지지하는 여성 2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아 왔다. 영국에 머물던 그는 지난 6월 19일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요청했다. 그는 스웨덴으로 송환될 경우 미국으로 재송환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며 스웨덴의 송환 요청이 미국 정보당국에 의해 기획된 작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 국무부 빅토리아 뉼런드 대변인은 “이 문제는 영국과 에콰도르, 스웨덴 간의 문제로 미국은 간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 CNN 방송은 에콰도르 정부가 외교적 마찰을 무릅쓰고 어산지의 망명을 허용한 것은 내년 2월로 예정된 대선 득표전략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콰도르 정치 분석가 호르헤 레온은 “코레아 대통령의 지지기반은 좌파”라며 “어산지 망명 허용은 코레아 대통령의 좌파 이미지를 돋보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산지는 19일 오후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 앞에서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3월 이후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