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배우기] 阿는 스와힐리어로 통합니다… 한인의사 장승훈씨 스토리

입력 2012-08-17 23:01


버락(Barak).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이름은 축복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온킹’에서 주인공 심바는 친구 품바와 함께 ‘하쿠나 마타타’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심바는 사자, 품바는 멍청이, ‘하쿠나 마타타’는 잘 알다시피 ‘문제없어’라는 말이지요. 이 단어들은 모두 키스와힐리(Kiswahili)입니다. 키스와힐리가 뭐냐고요? ‘한국어-스와힐리어 진료 사전’을 만든 내과 전문의 장승훈(33)씨도 3년 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도대체 키스와힐리가 뭡니까?”

키스와힐리는 스와힐리(swahili)의 언어(ki)라는 뜻입니다. 장승훈씨가 키스와힐리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2009년 국제협력단(KOICA)의 아프리카 탄자니아 파견 의료진으로 선발돼 1주일간 국내 교육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아, 아프리카에서는 스와힐리어라는 말을 쓰는구나.”

그게 전부였습니다. 스와힐리어를 배우려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 보았지만 관련된 책도 없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출판된 사전이 하나 있었지만 재고가 없어서 살 수 없었습니다(지금은 여러 권의 스와힐리어 책이 나와 있어요. 사전도 새로 펴냈고요).

결국 그가 2010년 탄자니아 다르살람의 줄리우스 니에레레 공항에 도착할 때 스와힐리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제 3년간 스와힐리어를 써야 하네”라는 생각이 전부였습니다. 인사말 한마디 할 줄 몰랐던 것이죠.

스와힐리어는 탄자니아·케냐 같은 동부 지역의 7000만명 이상이 모국어로 쓰는 언어입니다. 유사한 언어를 쓰는 지역을 합치면 서부와 남부까지 포함됩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입니다.

3000개가 넘는 아프리카의 언어 중 스와힐리어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꿈이 담긴 언어입니다. 아프리카 53개 국가들의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은 2004년 스와힐리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했습니다. AU 모임도 사실 영어나 프랑스어를 쓰면 더 편하지만 과거 식민지배 국가의 언어에만 의존하지 않고 아프리카의 언어로 소통하기로 한 것이죠.

그 이후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의 독립과 발전을 상징하는 언어가 됐습니다. 스와힐리어로 노래하고, 스와힐리어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나는 아프리카인이다”라는 자부심을 나타내는 행위가 된 것이죠.

장승훈씨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다르살람에서 한국외대 아프리카어학부 출신 한국인을 만납니다. 하루 8시간씩 한 달 동안 과외를 받습니다. 현장에서 부딪치며 병원 진료에 필요한 스와힐리어를 익혀갑니다. 1년 뒤 후배 의사들이 다르살람에 옵니다. “이분들을 위해 스와힐리어를 정리해야겠구나.” 정리한 원고를 스와힐리어 전문가에게 보여드려 나름 감수도 받습니다. A4용지 96쪽의 만만찮은 분량이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한국어 영어 스와힐리어 진료사전’의 탄생. 사전 서문에 장승훈씨는 이렇게 썼습니다.

“많은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했지만 원고의 내용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원고를 보셨다가 실망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원고를 공개하는 것은 많은 선후배 의료진께서 이 원고에 살을 더하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원고가 그 작은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았다가 현장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도록 앱(스마트폰 응용 소프트웨어)도 만들었습니다. 갤럭시나 옵티머스 베가 같은 안드로이드 휴대전화에서 ‘Medical Swahili Korean’을 검색해 다운받으면 됩니다.

장승훈씨는 오는 11월이면 3년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합니다. 그동안 그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결혼도 했고, 예쁜 딸도 얻었습니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렸는데, 탄자니아 최초의 한인 결혼식이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언어도 배우고 가족도 얻게 된 그에게 아프리카란 어떤 곳일까요.

“탄자니아에서 3년을 보내며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 땅에 대한 제 생각이 180도 바뀌었어요.”

아프리카는 지독한 가난, 내전이 끊이지 않는 땅으로만 알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별 다를 것 없었어요.”

좋은 의미로도 그렇고, 나쁜 의미로도 그러했습니다.

“여기도 공해가 심각해요. 10년 이상 된 낡은 차량 때문이죠.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빌딩들, 그 사이로 늘어선 걸인, 정글과 초원을 떠나 도시로 몰려오는 사람들, 빈민촌, 각종 강력범죄···. 전엔 생각도 못했던 아프리카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발전의 경험담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기가 챙길 떡고물만 바라는 일부 공직자들의 모습도 예상치 못했죠.”

다른 한편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외부의 도움만 바라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놀라운 전문성을 발휘하는 현지인을 만나게 되거나,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죠.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일 뿐, 막연한 동경이나 단순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오류입니다. 단지 우리보다 조금 많은 문제를 가진 땅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봉사단원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그 마음이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한번 짚어보셔야 합니다. 혹시 ‘아프리카는 못 사니까, 나는 잘 사니까 내가 도와줘야지. 이 사람들이 내 도움을 당연히 환영하겠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만약 이런 시선을 가진 채 이곳에 온다면 틀림없이 현지인에게 상처를 받게 됩니다.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고, 모욕을 당할 수도 있어요. 봉사자로 아프리카에 왔다가 미움과 실망을 안고 돌아가는 사람을 많이 보았어요.”

대한항공이 지난달 케냐 나이로비에 직항편을 취항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케냐 가는 비행기가 왜 필요해?”였습니다. 53개의 독립국가, 10억명의 인구, 인류의 발상지이면서 한국인 교민 1만3000명, 유학생만 해도 1000명이 넘는 대륙 아프리카로 가는 유일한 직항 노선인데 말이죠.

한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접하는 첫걸음입니다. 중국어나 일본어를 못하더라도 ‘워아이니’ ‘아이시테루(愛してる)’는 아는 것처럼 스와힐리어도 몇 마디 알아두면 어떨까요. 혹시 압니까, 언젠가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의 땅, 탄자니아에서 “나쿠펜다(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될는지.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