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돈, 불가분의 함수] 금배지의 상전 ‘왈왈구찌’

입력 2012-08-17 18:41


‘1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국무총리나 장관은 물론 대통령한테도 큰소리 땅땅 친다. 하지만 국회의원들도 ‘왈왈구찌’들 앞에선 쩔쩔맨다. 왈왈구찌는 지역구 유권자들에 영향력이 크고, 입담이 센 사람을 부르는 정치권 은어다. ‘빅 마우스’라고도 한다. 선거철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유권자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갑(甲)’으로 불린다.

최근 정치자금과 후원금 사건이 터져 나와 바짝 긴장하고 있는 금배지들. 4년마다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지역구 관리다. 여기에는 탄환이 필요하다. 신원이 드러날까봐 소속당까지 익명으로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는 국회의원과 측근들로부터 17일 ‘돈 얘기’를 들어봤다.

국회의원이 매월 받는 세비는 1200만원 정도. 연간 후원금은 1억5000만원 한도(선거있는 해는 3억원) 내에서 거둘 수 있다. 하지만이구동성으로 세비와 후원금으로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의원직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기본 경비만 따져 봐도 지역구 사무실 임대료, 직원 인건비, 운영비 등으로 최소 1000만원 안팎이 들어간다. 여기에 왈왈구찌들이 주기적으로 만들어주는 모임에 나가 밥을 사는 일도 허다하다. 동호회, 체육회, 동창회, 직능단체별 모임 등에 나갈 때마다 지갑을 열어야 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계산할 때는 의원 대신 다른 사람이 하지만, 나중에 거의 다 사무실 비용으로 편법처리되기 일쑤”라고 귀띔했다. 물품이나 ‘봉투’로 성의를 표시해야 할 행사도 끊이지 않고 명절 때마다 수백명에게 보내야 하는 선물비도 만만찮다.

선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대목’을 맞은 선거 브로커들이 찾아와 표를 모아주겠다고 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예외 없이 돈을 요구한다.

또 왈왈구찌나 브로커 같은 ‘물밑’ 운동원 이외에 동책(洞責, 동 단위 책임자), 면책(面責, 면 단위 책임자)들에게도 선거 전후로 활동비가 지급된다. 통상 동책에겐 일이 있을 때마다 100만원 정도 지급되는데, 한 지역구에 수십 개의 동이 있기 때문에 한번에 수천만원이 들기도 한다. 때문에 19대 총선 평균 법정선거비용이 지역구당 1억3000만원이지만 통상 법정비용보다 3∼4배 정도 더 드는 것은 기본이다. 많게는 10∼20배를 쓰는 후보도 적지 않다.

결국 자기 돈이 없는 정치인은 편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방식이 선거 때 지역구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차기 시의원이나 도의원 선거에 출마할 사람들에게 ‘선대본부장’이나 ‘직능위원장’ 등의 타이틀을 주는 것이다. 이게 법에 걸리면 ‘공천헌금’이 되는 것이고, 안 걸리면 ‘공천투자’가 된다.

한 재선 의원은 “정치인에게 제일 무서운 말이 ‘코빼기도 안 비친다’는 것”이라며 “돈을 들여 지역구를 관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우리는 선진국과 달리 ‘자발적 당원’이 아닌 ‘모집된 당원’이 많아 당에 대한 충성도나 참여도가 많이 떨어진다”며 “‘관리’에 돈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