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칼럼] 한글과 성경이 디지털에서 다시 만날 때
입력 2012-08-17 17:52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인 마크 놀(Mark A. Noll)은 ‘전환점’(Turning Points)이라는 그의 명저에서 지난 2000년 동안 교회사를 결정하였던 10가지 사건 가운데 하나로 ‘성경번역’을 꼽았다. 사실 제롬의 불가타역(주후 400년경), 위클리프의 영어 번역(1382∼1395년), 루터의 독일어 번역(1522년), 킹제임스역(1611년)은 지난 2000년 동안 서구 정신사와 기독교 문명의 원천이었다. 마크 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20세기 교회사를 결정한 다섯 가지 결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다시 한 번 더 ‘성경번역’을 꼽았다. 그가 볼 때 20세기 동안 기독교의 중심이 북반부에서 남반부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한 것은 바로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함으로써 이루어진 열매였다.
만약 누군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교회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한글 성경번역’이 결코 그 명단에서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 긴 세월 한자문명의 지배 아래에 살아 왔기 때문에, 19세기 말까지도 우리의 문맹률은 아주 높았으며 웬만한 동네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세종 대왕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문자를 창제해 주었지만(1446년), 중화주의에 함몰된 조선의 지성인들은 한글을 ‘암글’이라 멸시하며, 문학과 역사와 사상과 종교를 담아낼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다. 물론 그들은 불경도 유교의 경전도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글이 경전 가운데 경전인 성경을 완벽하게 담아내었을 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세종의 꿈은 비로소 실현되었다.
물론 한글 성경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얼과 언어를 보존하여 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몇 년 전 튀니지를 방문했을 때 초대교회의 최고의 변증가요 신학자였던 히포의 감독 어거스틴이 베르베르(Berber) 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베르베르족은 약 1000만명 정도 남아서 알제리와 튀니지 사이에 있는 사막 지대에서 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만약 어거스틴이 성경을 자신의 모국어인 베르베르어로 번역해 두었다면 그의 후손들은 결코 나라와 언어와 역사를 잃고 살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00년 전 우리에겐 한글이 성경을 만나고, 성경을 한글로 담아내는 한글과 성경의 융합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문명사적 사건이었고, 교회 부흥의 모체였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한류의 원동력이었다. 초기 성경번역위원회에서는 “성경은 본 말뜻도 구비하고 대한 말도 순순히 하여 알아보고 공부하기 쉽게 번역해야 한다”는 번역 원칙을 가졌으며, ‘입말’에 가까운 ‘셩경젼셔’(1911)를 만들어 내었다. 물론 성경 보급과 번역에는 희생도 있었다. 처음 성경을 전달하려던 토머스는 대동강에서 순교하였고, 첫 성경전서를 완성하기 위하여 목포로 가던 아펜젤러는 군산 앞바다에서 선박 사고로 순교적인 임종을 하였다.
지난 1세기 동안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성경과 우리말의 융합으로 아시아에서 기독교의 역사적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문명으로 우리의 말과 성경을 다시 한 번 융합하여야 할 역사적인 과제를 맡게 되었다.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된다. 현재 영미권에서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과 그리스어 신약 성경, 그리고 번역 성경을 모두 디지털화했고, 마우스를 클릭만 하면 원어의 발음과 뜻과 검색이 자유롭게 되는 소프트웨어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다. 구텐베르크가 성경을 필사본의 세계에서 책의 세계로 옮겼다면, 이제 그의 후예들은 성경을 책의 세계에서 디지털의 세계로 변환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원문 성경을 한글로 표현한다면, 신학교육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목회자들은 원문에서 말씀을 바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원문에서 직접 읽고 우리말의 개념으로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제2의 종교개혁과 제3의 부흥 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2011년 집계로 인터넷 사용자는 20억명, 페이스북은 7.5억명, 트위터는 2억명,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8000만명이며, 한류의 영향으로 세계 각국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디지털과 융합된 한글 성경으로 온 세계가 원문 성경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꿈을 새롭게 꾼다.
<총신대 교수·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