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 판결 안팎… “경제 기여 참작 사유 안돼” 향후에도 엄격 잣대 예고
입력 2012-08-16 22:05
법원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함에 따라 앞으로 재벌 총수나 기업 대주주들의 배임·횡령 등 경제범죄에 대해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 서경환 부장판사는 16일 선고 후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형벌을 요하는 국민 여론을 반영해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정한 양형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판결한 것”이라며 “경영공백이나 경제발전 기여 공로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기조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검찰이 한화그룹에서 압수한 문서 내용까지 공개하며 공모 혐의를 부인하는 김 회장이 유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압수 문건에 따르면 한화그룹 본부조직에서는 김 회장을 CM이라고 부르면서 CM은 신의 경지이고 절대적인 충성의 대상이며 본부조직은 CM의 보좌기구에 불과하다는 등 김 회장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보고·지휘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김 회장이 2007년 폭력사건에 연루돼 구치소에 있을 때도 임원들에게 주식관리를 잘하라고 당부하고 천안 백화점 부지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며 “CM 지시사항을 보면 김 회장이 수많은 계열사의 세세한 문제점까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방향을 지시하는 등 그룹 의사결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회장 측이 홍동옥 여천NCC 대표의 단독 행위로 돌리려는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게다가 올해 초 실형을 선고받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에 이어 김 회장까지 실형이 선고되자 법원의 ‘재벌 엄벌’ 의지가 재확인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종호 부장판사)는 지난 2월 1400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20억원을, 그의 모친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총수들의 재판을 앞둔 기업들은 겉으론 “우리는 큰 문제없을 것”이라면서도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비슷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도 이번 재판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민주화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해 김승연 회장의 경우 집행유예는 어렵지 않을까 전망했는데, 법원이 예상보다 더 강한 수를 던졌다”면서 “재계 총수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재판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최 회장은 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거의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자료들을 살펴보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최 부회장은 변호인들과 간간이 대화를 나누며 생수를 여러 통 비우기도 했다. 최 회장은 김승연 회장 재판에 대해 묻자 “다른 사람 재판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말하기 어렵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