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베네치아의 富를 키운 뿌리는… ´부의 도시 베네치아´
입력 2012-08-16 19:10
부의 도시 베네치아/ 로저 크롤리/다른세상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이자 상업의 도시다. 17세기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희곡을 남겼을 만큼 국제적 명성을 떨쳤다. 베니스는 베네치아의 영어 발음.
베네치아는 이미 15세기에 피렌체와 더불어 상업을 발판 삼아 예술을 꽃피운 르네상스 발상지였다. 당시 이곳 항구에 들어선 이방인들은 도시의 황홀에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수많은 갤리선(노를 주로 쓰고 돛을 보조적으로 쓰는 군용선)과 예인선이 온갖 물건들을 항구에 쏟아냈다. 카펫, 비단, 생강, 모피, 과일, 후추, 유리, 생선…. 틴토레토 등 베네치아 화가들은 풍부한 색채를 사용해 활력 넘치던 당시 풍경을 전한다.
그런데 베네치아가 거둔 성공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은 11∼16세기 500년 동안 무역대국으로 명성을 누렸던 도시국가 베네치아의 성공신화에 대한 분석이다.
이야기는 베네치아가 해상 지배자로 날개를 펴기 시작한 ‘오르세올로의 출항’에서 시작한다. 서기 1000년의 예수 승천일, 베네치아의 걸출한 도제(국가원수) 피에트로 오르세올로 2세는 아드리아해 해적들과 한판 전쟁을 위해 바다로 나섰다. 해상무역의 본거지 지중해로 나가는 길을 뚫기 위해서였다. 이어 웅비의 전기를 마련해준 11세기 말∼13세기 말의 십자군 전쟁을 거쳐 비잔틴제국의 멸망(1453)과 동인도 항로 발견(1498)으로 중계무역이 쇠퇴하기까지의 흥망사가 활기찬 어조로 펼쳐진다.
# 악조건, 그건 기회였다
베네치아는 원래 습지대였다. 6세기경 훈족(몽골족)의 습격을 피해 온 이탈리아 본토 사람들이 간척을 시작, 도시를 건설했다. 697년 초대 총독이 선출되면서 독자적인 공화제 통치가 시작됐다. 하지만 사람이 살 곳이 못됐다.
“석호에서 나는 숭어와 장어, 그리고 염전 외에 베네치아가 생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밀과 목재는 전혀 나지 않았으며, 육류도 거의 생산하지 못했다. 도시는 기근에 매우 취약했다.”(28쪽)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눈을 돌린 곳은 바다였다. 바다를 이용한 무역이었다. 도약할 기회가 왔을 때를 놓치지 않았다. 바로 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이 이탈리아 서부 항구도시 제노바 등과 거래해온 무기와 식량 공급 계약을 베네치아 상인들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이후 베네치아는 500년 이상 동부 지중해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 베네치아 vs 제노바
저자는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제노바도 비슷한 조건이 아닌가? 역시 바다에 의존했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목재는 충분했지만 비옥한 농경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바다라고 생각했다. 실제 1차 십자군 전쟁 동안 레반트 무역(지중해를 통과하는 동방무역)을 먼저 차지한 것은 제노바였다.
결정적으로 정치적 기질 차이가 두 도시의 승패를 가른 것으로 저자는 분석한다. 베네치아인들은 정부의 통제를 받은 데 비해 제노바인들은 개인주의가 강했다. 1492년 신대륙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제노바 선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같은 역사적 스타를 배출했지만 국가의 경쟁력은 뒤졌던 것이다.
“베네치아는 모든 것이 돈을 위해 조직된 일종의 합자회사였다. 14세기 초반부터 공화국은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가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해외무역 형태를 발전시켰다.”(352쪽)
1204년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 함락 이후 베네치아는 욱일승천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선박에 마르코 성인의 적금색 사자 깃발을 달고 세계를 누볐다. 리스크와 수입, 순익을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계산했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흥정했다. 거대한 해상제국을 이뤘지만 그들이 사용한 무기는 무력이 아니라 현금이었다. 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이 상징하듯 ‘냉혈한’ 이미지도 얻었다. “시리아의 아랍인들에게 베네치아인들(Venetians)이라는 단어는 ‘악한들(bastards)’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았다.”(199쪽)
# 근성 그리고 외교력
14∼15세기에는 지중해 무역을 놓고 제노바인, 비잔틴인, 헝가리인 등 수많은 세력이 이권다툼을 벌였다. 그곳에서 베네치아의 외교력은 빛을 발했다. 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면 제노바는 무장한 갤리선을 보내 상대 국가를 공격했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충분한 해군력을 갖췄음에도 외교로 풀어나갔다. 상인이 투옥되면 참을성 있는 영사를 파견했으며, 사소한 액수라 하더라도 배상 요청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이슬람 세계의 술탄이나 맘루크 같은 변덕스러운 지배자들에게는 조심스러운 외교를 펼치고 후한 선물을 주어 달랬다.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처음엔 저돌적으로 길을 뚫었고,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통찰했으며, 근성과 외교력까지 겸비했던 베네치아 상인들의 성공스토리는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영국 해군 집안에서 자란 저자는 어린 시절을 몰타에서 보냈다. 바다에서 보낸 경험이 지중해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베네치아를 탐구하게 만든 동력이다.
우태영 옮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