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러 VS 日] 과거사 앙금이 경제로 불똥… ‘먼 이웃’ 더 멀어진다
입력 2012-08-16 22:03
[이슈분석] 비틀어진 韓-日 관계 어디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0일 독도 방문을 기점으로 악화일로인 한·일관계가 영토·과거사 문제를 넘어 민간·경제 분야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지난 4년 반 동안의 밀월 관계가 어그러지는 데 단 일주일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를 ‘시시포스의 신화’에 비유했다. 한·일관계가 힘들게 밀어올린 바위가 산 정상에 닿기 직전 다시 굴러 떨어져 이를 다시 올려야 하는 형벌을 영원히 면할 수 없었던 시시포스의 운명과 같아졌다는 것이다.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현 정부 들어 한·일 갈등은 캘린더에 맞춘 ‘국지전’ 양상이었다. 3월 교과서 검정, 4월 외교청서, 7월 방위백서 발간 등 연례행사에 맞춰 암묵적인 선을 넘지 않는 항의와 유감이 오고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일본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주한 일본대사를 소환한 데 이어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및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까지 검토 중이다. 일본 내에선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중단도 거론되는 등 후폭풍이 더욱 거세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 정부가 ICJ 제소, 통화스와프 중단 카드를 쉽게 빼들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왕 발언’에 격해진 일본, 우리 정부는 달래기=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지사가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에 일본 정부가 공식 항의하는 등 한·일 외교 관계가 악화되자 한국 방문을 연기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나가사키현의 나카무라 호도(中村法道) 지사는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을 방문해 여행업계와 관광객 유치를 협의하고, 민간단체와도 교류할 예정이었다. 일본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요구, 홍콩 시위대의 센카쿠열도 상륙 등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에 항의하는 국회(중의원과 참의원) 결의안 채택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원칙을 견지했지만, 일왕 사과 발언 논란에는 한 발 물러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일왕을) 언급한 취지나 컨텍스트에 오해가 있어 일본이 거기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이해한다.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일 현안 외교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 대응하되 양국 간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대한 줄여 격해진 일본 국내정서를 가라앉히는 데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APEC이 분수령 될 듯=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양국 갈등은 쉽게 봉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양국 정권 모두 앞으로 더 강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다음달 8∼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주목받고 있다. 회의에 이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물론, 일본과 영토 분쟁 중인 중국·러시아 정상도 참석하기 때문이다. 관례적으로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지만 일본 측에선 벌써 보이콧 얘기가 나온다. APEC 기간동안 일본이 어떤 스탠스로 나오느냐에 따라 한·일 갈등 조기 봉합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정 엠바고(일정시점까지 보도유예)를 파기하고 사전에 보도한 일본 교도통신을 중징계하기로 했다고 박정하 대변인이 밝혔다.
신창호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